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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SF영화에 배우 박철민을 왜 썼을까

등록 2013-11-28 20:00

듀나 칼럼리스트
듀나 칼럼리스트
[문화‘랑’] 듀나의 영화 불평
며칠 전 내 트위터 타임라인 주변을 ‘한국식 에스에프(SF)’라는 주제가 휩쓸고 지나갔다. 그 주제가 김현석 감독의 <열한시>의 시사회를 보는 동안에도 희미하게 남아 있어서 여러 생각들이 다 떠올랐다. 어떻게 만들어야 좋은 한국식 에스에프 영화가 될까. 이런 영화를 만들려면 피해야 할 것이 무엇이고,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러다 중요한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한국 에스에프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박철민을 캐스팅해서는 안 된다. 배우 박철민의 연기력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에서만 연기가 유달리 나빴냐면, 그것도 아니다. 하지만 감독이 ‘한국적 에스에프’를 만들기 위해 그를 캐스팅할 생각이라면 다시 생각해보는 게 좋다. <7광구> 때만 해도 ‘아리까리’했는데, <열한시>를 보니 이건 그냥 확실해졌다. 시선을 끌기 위해 가만히 있는 남의 이름까지 멋대로 꺼냈으니 책임을 지기 위해서라도 설명을 시도해보기로 하겠다.

최근 들어 박철민은 주로 작품에 감칠맛을 넣어주기 위한 희극적인 조연으로 캐스팅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 경우 그가 연기하는 인물은 사실적이라기보다는 한국 사람들이 ‘코믹하고 재미있는 사투리 억양이 있는 아저씨’라고 생각하는 틀에 맞추어지는 경우가 많다. 관객들과 배우가 모두 익숙한 현대나 과거에 이런 배역이 들어가면 배우의 연기력이 그를 커버하며 현실감을 부여하기 때문에 별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 캐릭터들이 돌연변이 괴물과 싸우거나 시간여행을 하는 비현실의 세계로 넘어가면 억지스럽고 가짜같이 보인다.

박철민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사실 이건 김현석에도 통하는 이야기다. 많은 관객들이 <열한시>를 보면서 대사의 어색함과 투박함에 놀랐을 것이다. 아무리 오리지널 각본으로 시작한 영화가 아니더라도 김현석처럼 대사의 감이 좋은 감독이 왜 각색 과정 중 저런 대사들을 그대로 방치했을까? 답은 박철민 때와 같다. 에스에프 장르를 그릴 때는 일반적인 드라마와 로맨스를 그릴 때와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 특히 그 이야기 속의 인물이 어쩌다가 그런 상황에 말려든 일반인이 아닌 전문가일 때는. 위에 언급한 두 영화에서 박철민의 캐릭터는 모두 전문가이다. 그런 전문가가 그런 위기상황에 빠졌다면 윤아나 수지 농담보다는 그의 전문가적 행동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김현석은 과학적으로 말이 되는 시간여행물을 만들기 위해 전문가들을 만나고 카이스트 출신을 조감독으로 두는 등, 상당히 신경을 썼던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우선순위를 잘못 계산하고 있었다. 어차피 지금은 어떻게 이야기를 만들어도 과학적으로 정확한 시간여행물을 만들 수 없다. 중요한 건 이런 일을 하고 이런 상황에 빠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하느냐이다. 유감스럽게도 김현석은 이 인물들을 카이스트에서 학위를 딴 기존 김현석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놓고 스토리를 전개하다 보니 정작 이 스릴러에 꼭 필요한 논리적인 행동은 모조리 날아가 버린다. 인간적인 고민과 갈등이 언제나 우위에 있는 건 아니다. 그런 것들을 과감하게 포기하거나 축소하고 빠릿빠릿 머리를 먼저 굴려야 할 때도 있다. 적어도 <열한시>를 만들 때엔 그랬어야 했다.

듀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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