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씨네 유씨네
지난 13일 간암 투병 중 숨진 이성규 감독은 생전 낭만적 거지, 곡예단 배우, 연극인, 무용단원 같은 일을 꿈꿨다고 합니다. 1989년 우연한 계기로 방송일을 시작한 그는 다큐와 인연을 맺은 뒤, 불꽃같은 열정으로 낮은 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기록하는 데 온몸을 던졌습니다. 그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모습을 담기 위해 네팔의 오지 무스탕과 히말라야 골짜기, 인도 캘커타의 빈민가, 몽골 설원 등을 찾아다녔습니다. 이 과정에서 말라리아, 당뇨, 천식 등 합병증을 앓게 되었고 이빨이 여러개 빠져 틀니를 껴야 했습니다. 그는 “나의 카메라는 시대가 요구해서 찍는 게 아니라, 시대가 요구해야만 하는 걸 찍고 있다”는 중국 다큐멘터리 감독 리잉의 말을 빌려 자신의 작업을 설명했다고 합니다. 국내에서 그는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계의 맏형’으로 불렸습니다. 2007년 독립영화피디협회를 만들어 방송사와 제작사들의 횡포에 맞서는 데 앞장섰기 때문입니다.
19일 개봉한 이 감독의 유작 <시바, 인생을 던져>가 몇몇 독립영화 전용관에서 조용히 상영중입니다. 크리스마스 전날 찾은 한 극장에서 영화의 주인공 ‘병태’ 역을 맡은 배우 박기덕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관객 앞에서 쓰러져 죽더라도 (관객들한테) 직접 인사를 드리겠다. 시바, 인생을 던져. 어차피 제 인생은 항상 던지는 인생이었다”던 생전 이 감독의 뜻을 지켜주려고 영화 출연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개봉일부터 일주일간 모든 개봉관, 전회차에 무대인사를 다니고 있다고 합니다.
<시바…>는 다큐멘터리 피디 ‘병태’가 인도에서 다큐 프로그램을 찍으면서 진정한 삶의 가치를 발견한다는 내용의 극영화입니다. ‘성스러운 강’ 인도 갠지스 유역에서 “당신이 걸어온 길을 후회하지 말라. 당신의 모든 것을 잃는 순간이 된다”는 ‘섭리’에 순응하는 인도인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가치있는 삶에 자신을 송두리째 던진 이 감독의 자전적 모습이 그려져 잔잔하지만 묵직하게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홍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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