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나 칼럼니스트
듀나의 영화 불평
제임스 서버의 우울한 코믹 단편 <월터 미티의 숨겨진 삶>은 지금까지 두 번 영화로 각색되었다. 하나는 대니 케이가 나오는 1947년작 영화이고, 다른 하나는 얼마 전에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제목으로 국내 개봉된 벤 스틸러의 영화이다.
두 영화 모두 제임스 서버의 아이디어로 시작하지만 그 아이디어를 끝까지 따르지는 않는다. 서버의 월터 미티는 평생 동안 아내와 주변 사람들에게 시달리는 겁쟁이로 살아왔고 죽을 때까지 그럴 것이다. 심지어 그는 그의 유일한 도피처인 몽상 속에서도 상징적인 죽음을 맞는다.
그는 서버의 짧은 단편 속에서는 완벽하다. 하지만 그 아이디어로 극장용 장편영화를 만들 생각이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서버의 미티는 일차원적이고 부정적이다. 그는 서버가 본 위축된 미국 현대 남성의 잔인무도한 캐리커처이다. 이런 인물을 장편영화의 주인공으로 삼을 수는 없다. 이야기는 몇 분 만에 반복적이 되고 관객들은 흥미를 잃는다.
두 영화는 모두 미티에게 더 나은 삶을 주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삶은 그가 꿈꾸었던 백일몽과 구별하기 어려운 판타지다. 대니 케이의 월터 미티는 전설의 보석과 관련된 국제적 음모에 말려들고, 벤 스틸러의 월터 미티는 사라진 사진작가를 찾기 위해 그린란드에서부터 아프가니스탄까지 날아다니며 전세계를 뒤진다. 대니 케이의 월터 미티는 영화 내내 어리바리한 상태지만, 벤 스틸러는 영화가 끝날 무렵엔 그가 꿈꾸어왔던 것과 거의 비슷한 모습의 주인공으로 성장해 있다.
왜 여기에 냉소적이어야 하나? 우리 모두 일상에서 벗어난 좀더 환상적인 삶을 꿈꾸어 보지 않았는가. 물론 우리의 주인공은 더 현실적인 방법으로 그의 증상을 치료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린 벤 스틸러가 주연한 할리우드산 코미디 판타지 영화를 보러 왔다. 관객들의 기대는 고정되어 있고 거기서 너무 벗어나면 위험해진다. 그리고 진짜 모험의 세계에 뛰어든 몽상가의 이야기는 언제나 이야기꾼의 좋은 소재였다. 여러분을 설득하기 위해 굳이 <돈키호테>의 예를 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작은 문제가 있다. 그 때문에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매력적인 재료를 충분히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가능성을 100퍼센트 활용하지는 못한다. 그 문제점은 관객들이 허구와 현실의 안팎을 구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위에서 예를 든 <돈키호테>를 보자. 돈키호테의 이야기에는 두 개의 겹이 존재한다. 돈키호테는 거인을 보고 달려들지만 산초 판사와 독자들이 보는 건 풍차다. 하지만 벤 스틸러의 영화에서 월터 미티의 백일몽과 실제 모험을 구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이것은 진짜일 거야’라고 생각되는 부분들도 월터 미티의 백일몽과 다른 것 없는 방식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하긴 벤 스틸러의 월터 미티가 꿈꾸는 백일몽의 재료들은 모두 할리우드에서 왔다. 그게 다시 할리우드 영화 속으로 들어갔으니 이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결과물만 본다면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더 복잡한 구조를 가진 월터 미티의 백일몽이다. 아마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들은 영화 속 월터 미티가 <매트릭스> 액션을 꿈꾸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를 백일몽 소재로 삼을지도 모르겠다.
듀나 칼럼니스트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