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영화·애니

더빙 영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등록 2014-02-06 19:59수정 2014-02-06 20:22

듀나 칼럼니스트
듀나 칼럼니스트
듀나의 영화 불평
외화 녹음에 전문성우가 아닌 사람을 투입하면 멋있을 거라는 아이디어로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옛날 것은 <비비시>(BBC)의 <셰익스피어> 전집이다. 당시 이 시리즈를 수입했던 <티비시>(TBC)에서는 일반 성우 대신 전문 연극배우에게 더빙을 맡기는 모험을 했다. 결과가 어땠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이 시리즈가 <한국방송>으로 넘어간 후반까지 일반 배우들의 참여는 꾸준히 이어졌던 것 같다.

개그맨이 애니메이션 더빙에 참여한 것 중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옛날 것은 스필버그 사단에서 돈 블루스를 기용해 제작한 <공룡시대> 시리즈이다. 수입사에서는 엄용수를 캐스팅해서 내레이션을 하게 했는데, 그 결과물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내레이터로서 엄용수는 그냥 주어진 원고의 글자를 불안하게 읽은 수준에 머물렀다.

로컬라이징과 홍보효과를 목적으로 전문성우 대신 비전문 연예인을 기용하는 유행을 연 건 아마 <빨간 모자의 비밀>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자막판을 포기하고 강혜정, 노홍철, 김수미와 같은 연예인을 캐스팅한 이 영화의 성공은 수입업자들에게 콜럼버스의 달걀과 같았다. 그리 지명도가 높지 않은 애니메이션을 수입해서 연예인 더빙을 하면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홍보효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개그맨이나 그밖의 연예인들이 자기 유행어를 대사 사이에 삽입하고 포스터에 주인공 대신 얼굴을 박는 유행이 시작된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싫어하고 나도 신경이 거슬린다. 하지만 과연 이 영화들이 그런 캐스팅이 없었다면 국내에 소개되기는 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이런 불만이 다시 수면에 떠오른 건 디즈니의 히트작 <겨울왕국> 때문이다. 디즈니는 언제나 양질의 더빙 작업을 해왔는데, 이번엔 일반적인 인기배우들 대신 전문 성우와 뮤지컬 배우들을 기용했다. 영화의 흥행과 함께 더빙판에 대한 좋은 입소문이 돌아 자막판을 먼저 보고 더빙판을 보는 관객들도 생겨났다. 나보고 고르라고 한다면 여전히 자막판을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더빙판은 여러 면에서 좋은 대안이다.

단지 여기엔 조금 위험한 일반화의 가능성이 있다. 배우나 개그맨을 기용한다는 것, 더빙에 로컬라이징을 도입하는 것 자체가 과연 나쁠까? 이번 <겨울왕국>의 프랑스 더빙엔 프랑스 코미디언인 다니 분이 참여했는데 이 역시 기계적으로 비난받을 일인가? 실제로 찾아보면 애니메이션 더빙에 진지하게 참여했고 결과도 좋은 배우들도 많다. 아이돌 멤버들의 영화 촬영에 무조건 부정적일 필요가 없듯, 결과를 보고 판단을 내리는 것이 순서이다.

이 이야기를 꺼내게 된 건 장형윤 감독의 첫 장편 애니메이션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의 ‘연예인’ 캐스팅에 대한 댓글들을 읽었기 때문이다. 정유미와 유아인 캐스팅 때문에 무조건 반발하는 것이라면 그 반발은 조금 뒤로 미루어도 되지 않을까. 장형윤의 전작을 보아도 알겠지만 그의 영화에 지나치게 노련한 성우들만 나온다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어차피 이들은 개인기나 유행어가 있는 사람들도 아니고 녹음 과정엔 감독의 연기지도가 반영되어 있다. 어떻게 봐도 <겨울왕국> 같은 힘든 상대와 싸우면서 살아남을 수 있게 목소리와 홍보효과를 대준 이들의 참여를 옹호하고 일단 그 결과를 보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듀나 칼럼니스트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