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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계란으로 바위치기’ 나선 아버지의 싸움

등록 2014-02-06 19:59수정 2014-02-12 23:45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노동자의 실화를 다뤘다. 대기업을 상대로 힘겨운 법정 공방을 벌이는 아버지의 이야기 속에 가족의 진한 사랑을 그린다.  에이트볼 픽쳐스 제공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노동자의 실화를 다뤘다. 대기업을 상대로 힘겨운 법정 공방을 벌이는 아버지의 이야기 속에 가족의 진한 사랑을 그린다. 에이트볼 픽쳐스 제공
백혈병 사망 삼성노동자 실화
‘또 하나의 약속’ 6일 개봉
1만여명 후원금 모아 제작
딸 윤미(박희정)가 숨진 자리를 깔고 앉은 사나이. 윤미가 다녔던 회사에서 나왔다는 그의 손에는 딸의 ‘목숨값’이 담긴 돈가방이 들려 있다. 윤미는 스무살 때 “돈 벌어서 아빠 택시 바꿔 드리고, 엄마 일 그만하게 용돈 드리고, 남동생은 대학 보내주겠다”며 대학 대신 반도체 공장을 택한 착한 딸이었다. 아빠 상구(박철민)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회사에 취직했다”며 딸을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윤미는 공장에서 반도체 원판을 화학물질 혼합물에 담갔다 빼는 업무를 한 지 2년 만에 백혈병 판정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윤미는 고통스런 골수 이식 수술과 백혈병 재발 등을 거듭하던 끝에 병원에서 돌아오던 아빠의 개인택시 뒷자리에서 숨졌다. 회사 쪽에선 “세계 최고의 안전 사업장으로 기네스북에 오르기까지 한 기업입니다. 일부 시민단체의 주장과는 달리 백혈병과는 전혀 무관합니다”라는 말을 반복하며 책임을 회피한다. 한편으로 회사는 윤미의 사망 원인을 밝히려는 상구를 찾아가 은밀한 합의를 시도한다. ‘위로금’은 500만원에서 2000만원, 3억원, 10억원까지 올라간다. 하지만 상구는 “내 딸이 죽은 자리에서 당장 일어나라”며 거대 기업을 상대로 ‘바위를 치는 계란’이 되는 싸움을 벌인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6일 개봉)에 등장하는 사연은 2003년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에 걸린 뒤 3년여 만에 숨진 황유미씨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반도체 공장의 유해 화학물질로 딸이 숨졌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법정 싸움을 위해 6년간 온몸을 던지는 아버지 황상기씨와 이를 돕는 노무사 이종란씨의 실제 모습을 다뤘다. 이 과정에서 대기업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피해자 가족들을 상대로 겁박과 회유를 거듭하는 모습이 차갑게 그려진다. 영화는 다큐멘터리에 가깝게 느껴질 만큼 실제 사건을 자세하게 다뤘다. 황유미씨의 안타까운 죽음과 대기업에 맞서는 아버지 황상기씨의 모습이 투영되면서 따로 극적 요소를 넣지 않고도 울림을 준다. 반도체 공장 노동자들이 느끼는 위험과 공포가 현재진행형이란 점에서도 관객들의 공감을 얻을 만하다.

피해자 가족들의 싸움만큼 영화 제작 과정은 험난했다. 영화는 투자사를 찾지 못해 개인 투자자와 후원자 1만여명으로부터 10억원을 넘는 제작비 전액을 마련했다. 김태윤 감독은 “캐스팅이나 투자가 되겠냐며 말리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평범하신 분들이 제작비를 모아줬고 고비를 넘겨가며 완성했다. 제작과정에서 외압은 없었고, 그런 것에 겁먹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제작사는 투자·후원자 등을 상대로 지난해 12월부터 전국 16개 도시를 돌면서 릴레이 시사회를 열었다.

대기업을 강도 높게 비판한 영화인 만큼 ‘생활인’이기도 한 배우들로서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을 텐데, 박철민, 윤유선, 김규리 등 유명 배우들이 선뜻 출연을 결정했다. 박철민은 개봉 전 기자간담회에서 “영화를 위해 세계 여행 자금 중 일부를 후원금으로 건네거나 이민을 가기 전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 도움을 주고 싶다면서 돈을 건네는 등 작은 기적들이 모여 만들어진 영화”라고 말했다. 윤유선이 아내 ‘정임’ 역을, 김규리는 피해자 가족들을 돕는 노무사 ‘난주’ 역으로 출연한다.

애초 영화 제목은 삼성전자 광고 문구인 ‘또 하나의 가족’을 그대로 옮겨 썼지만, 개봉을 앞두고 <또 하나의 약속>으로 바뀌었다. 제작사 쪽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유가 분명 있지만, 영화 속에 등장하는 기업 쪽 사람들까지 포함해 더 많은 사람들한테 이야기의 진정성을 전하고 싶어 고심 끝에 바꿨다”고 밝혔다.

홍석재 기자

[관련영상] [한겨레 캐스트 #238] 삼성 백혈병 노동자 문제 이제는 해결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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