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문을 열어 반세기 넘는 역사를 이어온 서울 대학로 학림다방. 수많은 문화인들이 거쳐간 명소다. 2층 다락 난간은 음악가들의 흑백사진으로 도배돼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문화‘랑’] 공간과 사람
70년대 지식인 고뇌와 낭만 깃든
민주화 운동가들의 아지트
낡은 소파 등 옛 숨결 그대로
320년 된 파리 ‘르 프로코프’처럼
한국의 문화·예술인 명소 꿈꿔
70년대 지식인 고뇌와 낭만 깃든
민주화 운동가들의 아지트
낡은 소파 등 옛 숨결 그대로
320년 된 파리 ‘르 프로코프’처럼
한국의 문화·예술인 명소 꿈꿔
다방문이 열리고 30분쯤 지났을까? 17일 검은 두루마기를 차려입은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느릿한 걸음으로 ‘학림다방’에 나타났다. 그는 1956년부터 이곳을 다니는 학림다방의 산증인이다. 곧 베토벤 <운명교향곡>이 흘러나온다. 학림다방에서 58년째 이 곡을 즐기는 백 소장을 위한 배려다. 아침마다 다방을 찾는 그를 위해 창가 쪽 자리에는 늘 ‘예약석’ 표시가 되어 있다.
백 소장 같은 이들한테 학림다방은 가난했던 젊은 시절 외상 커피를 마시며 열정을 토해내고, 술 사줄 사람을 기다리며 토론을 벌이던 ‘일터’였다. 백 소장은 “가난한 나그네가 원두막에 들러 참외 껍질을 씹다가 떠나려고 하면 ‘참외는 왜 안 가져가냐’고 묻는 원두막 같은 곳이 학림다방”이라고 했다.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학림다방’은 그런 곳이다. 누군가 60여년에 걸친 세월 동안 이곳을 찾고, 옆자리에 앉은 누군가 ‘민중 문화’에 대한 열변을 토한다. 한켠에선 젊은이들이 무선 인터넷을 즐긴다. 이들한테 학림다방은 진한 커피와 복고풍 파르페, 크림치즈 케이크가 맛있는 ‘고풍스런 옛날식 카페’다.
대학로의 상징이 된 학림다방은 ‘대학로’라는 거리 이름이 생긴 1985년 이전부터 이곳을 지켜왔다. 지금의 8차선 도로 대신 개천과 아담한 다리가 있었고, 드물게 막걸릿집이나 중국집이 있던 시절에 들어섰다. 다방 이름은 당시 부근에 있던 서울대 문리대의 축제 이름인 ‘학림제’(學林祭)에서 따왔다. 주로 대학생들이 즐겨 찾아 한때 ‘서울대 문리대 제25 강의실’로 불리기도 했다.
전국에 1만4000개에 이른다는 커피숍들이 넓은 공간과 화사한 인테리어로 눈길 끌기 경쟁을 벌이는 요즘, 학림다방은 유심히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울 만큼 평범한 모습이다. 하지만 일부러 지우지 않고 남겨 놓은 세월의 흔적들이 시간이 쌓여 생겨나는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계단을 올라 2층으로 접어들면 인기 뮤지컬 <지하철 1호선> 포스터가 사람들을 맞는다. 1994년 초연 때의 것으로, 20년 역사를 간직한 포스터다. 부서질 듯 낡은 나무문 손잡이는 사람들의 손길에 페인트가 모두 벗겨졌다. 수십년 된 낡은 소파와 테이블 10여개가 있고, 계산대 뒤편으로 빼곡히 들어찬 클래식 엘피(LP) 레코드판 1500여장과 30여년 전에 음반사한테 얻은 클래식 연주자 사진들이 걸려 있다. 마치 시간이 정지한 듯한 곳이다.
학림다방은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는 ‘오래된 다방’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1960년대 이후 진보적 지식인들과 독재 정권에 저항하는 세력들이 이곳을 찾았다. 이청준, 천상병, 김지하, 황석영 같은 문인과 이야기꾼 백기완, 춤꾼 채희완, 소리꾼 임진택, 노래꾼 전인권, 연출가이자 작곡가인 김민기 같은 이들이 단골이었다. 서슬 퍼런 시대에 철학과 역사, 예술을 논하던 ‘진보의 아지트’였다.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각계 인사 800여명이 글귀를 남긴 학림의 방명록에 이런 역사가 고스란히 살아 있다. 시인 김지하는 “학림 시절은 내게 잃어버린 사랑과 실패한 혁명의 쓰라린 후유증, 그러나 로망스였다”고 적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2년 이곳을 찾아 “오늘 또 좋은 곳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기쁩니다”란 글을 남겼다.
현대사의 아픔도 다방 역사에 고스란히 담겼다. 1981년 학생운동조직 전국민주학생연맹(전민학련)을 간첩으로 몰아 53일간 불법감금과 고문, 폭력을 가했던 용공조작사건 ‘학림사건’도 이들 학생들이 학림다방에서 모였던 데서 이름을 가져왔다. 최근 영화 <변호인>의 배경이 됐던 ‘부림사건’ 역시 ‘부산의 학림사건’이란 뜻으로 학림다방과 관련이 있다.
학림다방은 다방이 너무 많아져 ‘다방 망국’ 이야기까지 나왔던 1960년대 지식인들을 위한 다방으로서 체면을 지켰던 곳이기도 하다. 명동의 오아시스, 돌체, 봉선화, 인사동의 남궁, 비너스 카카듀, 종로2가의 양지, 영보그릴, 서라벌 등 시대를 풍미했던 다방들이 모두 사라졌지만 학림만은 남았다.
학림다방의 또다른 정체성은 58년 전통의 ‘커피가게’다. ‘네번째 학림지기’로 1987년부터 학림다방을 운영해온 이충렬 대표는 커피 원두를 갈아 만드는 ‘핸드드립 커피’가 생소하던 시절, 매일 20잔씩 커피를 마시며 ‘학림 브랜드 커피’를 만들었다고 한다. 에스프레소란 단어가 낯설 때 7잔 분량 원두로 1인분 커피를 만든 ‘학림 로열 브랜드’는 지금도 학림 최고의 인기 메뉴다.
이제 학림다방은 320년 역사를 자랑하는 프랑스 카페 ‘르 프로코프’를 꿈꾸고 있다. 르 프로코프는 헤밍웨이, 랭보, 볼테르, 루소 등이 문학과 철학, 역사를 이야기했던 곳으로 유럽 전체의 명소로 사랑받는 곳이다. 이충렬 대표는 “한때 학림다방을 사랑하는 이들이 ‘학림커피’를 브랜드화한 ‘학림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이런 노력은 지금도 유효하다”며 “젊은이들이 시대를 고민하고, 예술을 이야기해온 이곳이 언제까지라도 현재진행형 의미를 지니는 공간으로 남게 하고 싶다”고 했다.
다방 입구에 새겨진 황동일의 시 ‘학림: SINCE 1956’의 한 구절이 100년을 꿈꾸는 다방 ‘학림’의 의미를 말해주는 것 같다. “학림은 아직도, 여전히 60년대 언저리의 남루한 모더니즘 혹은 위악적인 낭만주의와 지사적 저항의 70년대쯤 어디에서간 서성거리고 있다…. 이 초현대 초거대 메트로폴리탄 서울에서 1970년대 혹은 1960년대로 시간 이동하는 흥미로운 체험을 할 수 있는 데가 몇 군데나 되겠는가? 그것도 한 잔의 커피와 베토벤쯤을 곁들여서….”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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