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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인류를 응징하러 돌아왔다

등록 2014-05-14 19:23

영화 ‘고질라’
영화 ‘고질라’
외고 l 탄생 60주년 영화 ‘고질라’
54년 일본서 첫등장 대흥행
98년 할리우드서 리메이크 혹평
‘인간의 악행·오만이 만든 괴물’
원작 충실히 재현해 곧 개봉
“고질라, 분노한 자연의 아이콘”
거대한 괴수가 나타나 대도시를 무자비하게 파괴하는 <고질라>는 비현실적이고 황당한 이야기다. 그럼에도 1954년 일본에서 처음 만들어진 <고질라>는 반세기가 넘도록 20여 편의 시리즈로 이어지며 국민적인 인기를 끌었다. 미국에서 1956년 <괴수왕 고질라>라는 제목의 편집판이 개봉되어 화제를 모았다. 1998년 제작된 할리우드의 <고질라>는 혹평 일색이었지만 제작비는 건졌고, 고질라 탄생 60년인 올해 좀 더 진화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핵실험의 부작용으로 깨어나 도시를 짓밟고 괴수들과 싸우는 고질라가 일본을 상징하는 캐릭터를 넘어 서양에서도 인기를 얻은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의 <고질라>는 몸집만 거대한 괴수의 난동을 그린 영화가 아니다. 방사능 때문에 돌연변이가 된 괴물이 나오는 SF영화, 외부의 침입자가 내부로 침범해 오는 공포영화다. 또 고대의 공룡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판타지영화이며, 냉전 시대의 핵전쟁에 대한 공포와 원폭의 경험을 투영한 정치적인 풍자영화다. <고질라>의 아이디어는 도호영화사 프로듀서인 다나카 도모유키에게서 시작되었다. <킹콩> 같은 괴수영화에 핵폭탄의 공포를 합쳐놓으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다나카는 SF작가 가야마 시게루에게 시나리오를, 당시 특수효과의 일인자인 쓰부라야 에이지에게 캐릭터 디자인을 맡겼다. 감독은 혼다 이시로. <고질라>는 일본에서만 1억5000만엔이 넘는 수익을 올렸고, 일본에 취재를 온 미국 기자가 고질라의 난동을 목격한다는 내용으로 편집되어 미국에서 개봉했다.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막을 수 없는 괴수가 도시의 모든 것을 파괴하는 광경은 이전의 괴수영화라 할 <킹콩>과는 전혀 다른 충격이었다. <킹콩>은 인간과의 교감을 강조했지만 <고질라>는 난폭한 괴수를 ‘공포의 신’으로 부각시켰다. 게다가 핵실험이 원인이 된 고질라의 습격은 원폭 체험이 있는 일본인에게 현실적인 공포로 다가왔다. <고질라> 이후 일본에서는 <하늘의 대괴수 라돈> <모스라> <우주대전쟁> <가메라> 등 특수촬영을 이용한 괴수 SF영화가 하나의 장르로 정착되었다.

일본에서는 킹콩을 연상시키는 고릴라와 지구상에서 가장 큰 생물인 구지라(고래)를 합쳐 ‘고지라’였지만 영문제목으로는 고질라(Godzilla)가 되었다. 고지라도 좋은 합성어였지만, 영어로 번역되면서 붙은 ‘god’이란 단어가 절묘했다. 고질라는 할리우드 변종괴물영화에서 흔히 보이는 그저 거대해진 괴물이 아니다. 심해에서 깨어난 고질라는 일본에 상륙하여 모든 것을 때려 부순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거나, 고질라의 분노가 잦아들기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고질라는 괴수를 넘어선, 인간이 저지른 악행과 오만함을 벌주기 위해 세상을 정화하는 파괴신이다. 화산, 지진, 태풍이 끊임없이 찾아오는 일본에서 자연재해는 일종의 신으로 여겨진다. 핵폭탄의 공포를 상징하는 고질라도 마찬가지였고, 시리즈가 이어지며 외계의 괴물 등 지구를 파괴하려는 괴수들을 물리치는 수호신으로까지 격상된다.

98년 롤랜드 에머리히가 만들었던 할리우드 <고질라>가 혹평을 받은 이유는 고질라를 단순히 공룡을 닮은 거대 괴수로만 그렸기 때문이다. 일본 고질라는 공격에 상처를 입어도 금방 재생이 되고 입에서는 화염을 내뿜는다. 랩터처럼 펄쩍펄쩍 뛰어다니며 사람을 잡아먹으려는 괴수는 우리가 아는 고질라가 아니었다.

김봉석 대중문화 평론가
김봉석 대중문화 평론가
시각효과 디자이너로 유명했던 가렛 에드워즈 감독이 2014년 새로 만든 <고질라>(사진)는 원형을 충실하게 재현한다. 일본의 핵발전소를 붕괴시켰던 괴수가 15년 만에 깨어난다. 태평양을 건너 샌프란시스코로 향하는 괴수의 뒤를 또 다른 물체가가 뒤쫓는다. 세상을 파괴하려는 괴수를 막기 위해 지구 스스로 자정활동에 들어간 것이다. 이번 <고질라>는 일본의 고질라가 그랬듯이 지구의 평화를 위하여 괴수를 응징한다. 딱히 인간을 위한 것은 아니다. 인간은 자연을 지배한다고 생각하지만, 지구를 지배하는 것은 자연이다. 고질라는 자연의 분노가 극대화된, 실체화된 아이콘이다. 거대한 괴수와 싸우는 고질라의 웅장한 모습, 그 포악한 맹수의 포효를 보고 있으면 깨달을 수 있다. 우리 인간이 결코 지구의 지배자가 아님을. 오히려 지구를 망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고질라>의 주인공 역시 인간이 아니라 고질라다. 15일 개봉.

김봉석 대중문화 평론가

loutsi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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