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나의 영화 불평
김대우의 <인간중독>의 무대는 1969년 군 관사이다. 특별히 매력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할 말은 많은 곳이다. 대한민국 군대문화라는 상수가 베트남전이라는 변수를 만났다. 무슨 이야기건 나올 수 있다.
김대우는 이 공간을 해석하기 위해 로맨스를 선택한다. 억압적인 환경을 불륜이나 로맨스로 푸는 건 김대우의 오랜 장기이다. 전쟁영웅이지만 군대 안의 정치에 영 서툰 교육대장 김진평은 부하 장교 경우진의 아내 종가흔과 사랑에 빠진다. 불륜이지만 핑계가 있는 불륜이다. 이런 세계와 잘 어울리지 않는 순수한 영혼인 두 사람이 서로를 만났으니 관객들의 용서는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이게 그의 각본작인 <정사>나 <스캔들>, 감독작인 <음란서생>이나 <방자전>에서만큼 잘 풀리지가 않는다. 유머가 빠진 게 문제가 아닌가 했다. 하지만 <정사>도 그렇게 유머 있는 영화라고 할 수는 없었다. 다음에는 배우 문제가 아닌가 했다. 이 영화에서 김진평을 연기한 송승헌은 어느 기준으로 보더라도 이런 종류의 로맨스 연기에 능숙한 배우는 아니다. 영화는 될 수 있는 한 그의 연기를 억누르려 하지만 감정이 터져나올 때는 그의 단점들이 역력하게 보인다. 그런 장면에서 그는 마음이 아픈 것보다는 신체 장기의 일부가 아픈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영화가, 캐릭터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관객들을 설득하는 데에 실패했다는 것이었다. 캐릭터의 육체적 매력은 잘생긴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으로 일단 완성되었다. 하지만 그 뒤로는 갑갑해진다. 베트남에서는 유능한 군인이라는데 직접 그 광경을 보지 못한 우리로서는 짐작만 할 뿐이다. 육사 때부터 엘리트 길을 걸었다는데, 그 역시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고. 관객들이 볼 수 있는 건 좋아해서는 안 되는 여자를 좋아하는 일차원적이고 매우 갑갑한 남자이다. 그의 모든 장점들은 주변 사람들의 정보 제공으로만 전해지고 스크린 밖으로 나오지를 않는 것이다.
이 문제점은 치명적이다. 그냥 불륜 이야기라면 어디로 가도 된다. 하지만 영화는 1969년 군 관사라는 배경과 베트남전 출신 장교라는 인물을 넣었다. 당연히 이 설정을 완성하려면 그는 그 양쪽 차원 시공간을 모두 점유하는 입체적인 인물이어야 한다. 그래야 그를 중심점으로 해서 김대우가 메시지를 넣으려 한 작은 세계가 완성된다. 하지만 영화가 주인공에게 그런 입체성을 넣어주지 못한다면 그런 계획은 오로지 보도자료의 작품 의도와 조연들의 대사 속에나 남는다.
캐릭터 만들기의 실패일까. 아니, 이건 오히려 자성의 결여로 보인다. 영화는 한 시공간을 비판하기 위해 그 세계에서 벗어난 인물을 만들었다. 결과가 아무리 나쁘고 막판에 진상을 떨 수밖에 없다고 해도 관객들에게 이 인물은 대안이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어떻게 해야 그를 그런 인물로 만들어야 할지 모른다. 그들이 비난하는 시스템 바깥에서 사고하는 방법을 아직 온전하게 깨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야기를 전개시킨다면 주인공은 당연히 속이 텅 빈 공기인형일 수밖에 없다.
듀나 칼럼니스트
듀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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