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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꿈인 듯 현실인 듯
그 도시, 경주

등록 2014-06-10 18:46수정 2014-06-10 20:43

영화 <경주>. 사진 언니네홍보사 제공
영화 <경주>. 사진 언니네홍보사 제공
경계인 다뤄온 장률 ‘조선족 감독’
경험 토대로 만든 영화 ‘경주’
박해일·신민아 등 인상적 연기
‘웃음코드’ 류승완 카메오 출연
신라 천년의 고도 경주. 커다란 왕릉을 사람 사는 집과 모텔이 둘러싸고, 그 무덤 앞에서 교복 차림의 한 쌍이 뽀뽀하고, 그 옆으로 소풍 나온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광경이 아무렇지도 않은 곳. 그곳에 가면 과거와 현재, 삶과 죽음, 꿈과 현실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것 같다.

장률 감독도 그랬을 것이다. 중국 조선족 출신으로, 영화 <망종> <경계> <두만강> 등을 통해 경계인들의 이야기에 천착해온 그다. 장 감독은 1995년 경주를 처음 찾았다. “무덤과 보통 사람의 삶이 자연스럽게 뒤섞여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여운이 남았다”고 그는 말했다. 당시 찻집 아리솔에 갔다가 벽지에 그려진 춘화를 봤다. 그림을 잊을 수 없어 7년 뒤 아리솔을 다시 찾았지만, 춘화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장 감독은 “7년 전도, 경주를 다시 찾았을 때도 꿈인지 현실인지 경계가 모호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장 감독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극본을 쓰고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결과물이 오는 12일 개봉하는 <경주>다. 한국 사람이면서 중국 베이징대 동북아정치학과 교수를 지내는 최현(박해일)은 대구의 지인 빈소에 갔다가 충동적으로 경주에 간다. 7년 전 본 찻집의 춘화가 떠올라서다. 찻집에 가니 춘화는 사라지고 없다. 찻집 주인 공윤희(신민아)는 낯선 행동을 하는 최현을 경계하다가 차츰 마음의 문을 연다.

영화는 과거 회상 장면 하나 없이 시간의 흐름대로 진행된다. 최현이 옛 애인(윤진서)을 경주로 불러내 만나는 상황이나 최현과 공윤희가 여럿이 어울리는 술자리에서 겪게 되는 상황이 낯설지가 않다. 지질하지만 묘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다만 홍 감독이 지식인의 허위와 위선을 날것 그대로 밑바닥까지 까발린다면, 장 감독은 선이 고운 흐름으로 영화를 이끌어 간다. 끝내 영화는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지점에까지 이른다.

장 감독은 “영화를 찍는 동안에도 꿈인지 현실인지 모호했다. 그래서 영화 자체도 그렇게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촬영 내내 현장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지막 촬영을 마치고 슬펐다. 좋은 꿈, 재미난 꿈에서 깨어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다”라고도 했다.

장면을 끊지 않고 길게 이어가는 롱테이크 촬영이 많은 가운데 박해일의 연기가 빛을 발한다. 중국어에다 일본어까지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인텔리의 면모와 함께 깊은 속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엉뚱한 구석을 지닌 복합적 인물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표현해낸다. 이런 종류의 영화 경험이 많지 않은 신민아도 차분하고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주며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인상적인 방점을 찍는다.

의외로 영화 곳곳에 유머 코드가 심어져 있다. 특히 여성스러운 플로리스트로 출연한 류승완 감독과 지나치게 진지한 북한학과 교수를 연기한 가수 백현진(어어부 프로젝트)이 감초 구실을 톡톡히 한다.

뒷얘기를 더하자면, 장 감독이 찾았던 찻집 아리솔은 실제 영화의 배경이 됐다. 장 감독이 95년 처음 경주에 왔을 때 봤던 춘화는 나중에 알고 보니 ‘십장생 화가’로 잘 알려진 김호연 동국대 교수의 작품이었다. 김 교수는 영화를 위해 자신이 과거에 그렸던 춘화를 재현해 그려 영화와 같은 <경주>라는 제목을 붙였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언니네홍보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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