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노아 바움백의 ‘프란시스 하’
뉴욕 풍경 회색 영상에 담아
뉴욕 풍경 회색 영상에 담아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언젠가는’에서 이상은은 이렇게 노래했다. 청춘이 얼마나 빛나고 아름다운지를, 정작 당사자인 청춘은 알지 못한다. 아프고 불안하고 버겁고 흔들린다. 하지만 지나보면 늘 되돌아가고 싶은 것도 청춘이다. 그래서 청춘은 향수를 부른다. <프란시스 하>는 청춘에게는 공감을, 청춘을 지나보낸 이들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영화다.
프란시스(그레타 거윅)는 미국 뉴욕에 사는 27살 여성이다. 현대무용가로 성공해 세계를 정복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꾸지만, 현실은 뭐 하나 제대로 되는 일 없는 평범한 연습생 신세다. 직업을 물어오면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이긴 한데, 진짜로 하고 있진 않다”는 애매한 답을 할 수밖에 없다. 사소한 말다툼 끝에 애인과 헤어지고, 철석같이 믿고 의지해온 단짝친구이자 동거인인 소피(미키 섬너)도 독립을 선언한다. 직업도, 사랑도, 우정도 무엇 하나 쉽지 않은 프란시스이지만, 그 와중에서도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당당한 홀로서기에 몸을 내던진다.
27살. 많지도 적지도 않은 나이. 누구는 프란시스에게 “27살이라고? 늙었네”라고 하지만, 연출과 각본을 맡은 노아 바움백 감독은 자신의 27살에 대해 이렇게 회상한다. “터무니없을 만큼 어렸지만, 스스로는 늙었다고 느낀 나이. 모든 게 기대처럼 잘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때.” 영화는 ‘평범한 27살 뉴요커’라는 보통의 주인공을 통해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청춘의 통과의례를 담담한 시선으로 좇는다.
우디 앨런의 뒤를 이을 또 하나의 뉴욕 출신 감독으로 거론되는 노아 바움백은 과감히 흑백 촬영을 선택했다. 화려하고 요란한 뉴욕의 풍경을 고풍스러우면서도 감각적인 회색톤 영상으로 담아냈다. 감독은 “프란시스의 이야기에 즉각적인 향수를 담아내고 싶었다”고 의도를 설명했다. 흑백 영상은 이야기 전개 방식과 맞물려 1950년대 후반 60년대 초반 프랑스에서 일었던 새로운 흐름인 ‘누벨바그’ 영화를 떠올리게도 한다. 실제로 몇몇 장면들은 누벨바그 고전을 오마주한 듯 보인다.
음악의 쓰임새도 적절한데, 프란시스가 거리를 달리는 장면에서 흐르는 데이비드 보위의 ‘모던 러브’가 특히 강렬한 인상을 준다. 이 곡은 누벨바그의 후예로 불리는 레오스 카락스 감독의 <나쁜 피>에서 거리를 달리는 장면에 쓰인 바 있다. 데이비드 보위의 ‘스페이스 오디티’를 가장 효과적으로 쓴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조지 드라콜리아스가 음악감독을 맡았다. 국내 20대 여성 팝 듀오 ‘루싸이트 토끼’는 영화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곡 ‘렛 미 댄스’를 9일 발표했다.
영화 제목에서 프란시스 뒤에 왜 ‘하’가 붙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마지막 장면에 가서 풀린다. 그 장면은 프란시스 이야기의 또다른 시작 같다.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등 언론과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이 영화를 ‘올해의 영화 톱10’에 꼽았다. 17일 개봉.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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