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화계에서는 윤종빈 감독의 새 영화 <군도>(사진)를 둘러싸고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혹평 일색인데 흥행은 1주일 만에 관객 400만명이 드는 현상이 벌어졌다. 흥행 이유에 대해선 말하지 않겠다. 개봉관 수, 같이 붙은 영화, 계절적 요인 등 여러가지 작품 외적인 요인이 작용하기 때문에. 십년, 이십년 영화판에 있었던 관계자들도 영화 흥행을 맞히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 실망한 사람들의 목소리는 대부분 일치한다. “윤종빈 감독이라 기대했는데 재미없더라.”
강동원-하정우라는 막강한 투톱 주연이 있었음에도 윤종빈 감독의 연출력을 기대하고 간 관객이 많다는 뜻이다. 전작들에서 보여준 탄탄한 연출력 때문이리라. 윤 감독의 전작인 <범죄와의 전쟁>에는 전국적인 인기를 누린 명대사가 하나 있었다. (부산 사투리로) “살아있네!”
보통 ‘살아있다’는 표현은 ‘생생하다’, ‘건강하다’는 뜻이지만 영화 속 대사 ‘살아있네’의 뜻은 이름값이나 얼굴값을 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윤종빈이라는 이름값에 기대하는 영화적 재미는 ‘어그러진 관계 사이에서 빚어지는 긴장과 의외성’ 정도가 아닐까.
그런데 이번 영화 <군도>에서는 긴장도 의외성도 밀도가 확 떨어졌다. 대신 과다하게 친절한 내레이션과 무협지와 게임의 이미지를 차용한 소제목, 웨스턴 무비에서 빌려온 음악과 소품들로 익숙한 오락영화를 만들어냈다. 전작의 관객수는 가뿐히 뛰어넘는 흥행성공을 거둘 것으로 보이나 윤종빈 감독의 팬들이 원한 영화는 아니었다. <군도>를 보고 “살아있네!”라고 흐뭇하게 말할 관객이 있을까?
어떤 대상을 좋아한다는 것은 동시에 기대를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좋아하는 만큼, 기대하는 만큼 그 대상을 응원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기꺼이 돈을 지불하기도 한다. 그러니 돈을 내고 영화를 본 관객들은 죽어버린 영화에 대해 얼마든지 실망도 하고 비판할 자격이 있다. 나를 포함해서.
사람은 한 번 죽으면 다시 살아날 수 없다. 그러나 윤종빈 감독의 어법으로는 가능하다. 죽은 줄 알았던 왕년의 주먹이 다시 강해질 수도 있고 살쪄 망가진 왕년의 미녀가 몸 관리를 통해 다시 아름다워질 수도 있다. 윤종빈 감독도 그랬으면 좋겠다. 언제가 될지 모를 그의 다음 영화를 본 관객들이 극장을 나서면서 내뱉는 말을 듣고 싶다. 윤종빈이 살아있네!
살아있기를 바라는 대상이 어디 영화감독뿐이겠는가. 어쩌면 선거야말로 ‘살아있음’을 표로써 평가받는 가장 냉혹한 판정의 자리다. ‘미니 총선’이라 불렸던 7·30 재보궐 선거가 끝났다. 선거에서 패배한 후보자와 정당은 지지자들의 기대에 부응했는지, 바꾸어 말하면 이름값을 했는지를 반드시 뒤돌아봐야 한다.
재보궐 투표 결과를 보고 내가 어느 정당을 지지하느냐와 상관없이 몹시 실망했다. 경쟁자가 너무 약하면 디펜딩 챔피언의 실력도 떨어진다. 이런 식으로 야당이 무력하게 무너지는 상황은 집권 여당에도 우리 국민들에게도 좋을 게 하나도 없다. 다음 선거에서는 부디 팔딱팔딱 빠릿빠릿하게 살아있는 도전자의 스텝을 보고 싶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도 민주주의 국가에 살면서 세금 꼬박꼬박 내는 국민인데, 어느 당이 덜 한 심한가를 고민하지 않고 어느 당이 더 좋은 지를 고민해야 하는 투표, 한 번쯤은 해보고 싶다.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