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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네 잘못이 아니야

등록 2014-08-14 19:43수정 2015-05-26 10:36

'굿 윌 헌팅'에서의 로빈 윌리엄스.
'굿 윌 헌팅'에서의 로빈 윌리엄스.
이재익의 명대사 열전
# 로빈 윌리엄스를 추억하며

며칠 전 세상을 떠난 로빈 윌리엄스는 할리우드 배우 중에서도 연기폭이 제일 넓은 축에 속했다. 여장 남자부터 의사, 대통령, 사이코 스토커, 피터팬, 심지어 로봇이나 램프의 요정 지니 같은 인간 외의 역할을 맡은 적도 있다. 현실 세계와 판타지, 심지어 성별과 종까지도 가리지 않은 그의 연기는 대부분 성공을 거뒀다.

우리가 영화를 보다가 제일 자주 하는 얘기가 ‘○○○ 연기가 별로야’라는 말이다. 연기파 배우라고 하더라도 몇몇 작품에서는 연기의 밀도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로빈 윌리엄스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연기를 못한 작품이 단 한 작품도 기억나지 않는다. 작품 자체가 별로였던 적은 있어도. 혹시 그의 연기가 별로였던 영화가 있다면 덧글로 알려주시길.

그렇게 다양한 역할 중에서도 그와 가장 잘 어울리는 역은 선생님 역할이었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는 키팅이라는 고등학교 교사로, <굿 윌 헌팅>에서는 숀 맥과이어라는 심리학 교수로 나온다. 두 영화 모두 감히 걸작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을 만큼 훌륭한 영화이니 안 보신 분들은 이 기회에 꼭 챙겨보시길. 휴지는 필수.

키팅 선생님의 가르침과 숀 선생님의 가르침은 지향점이 다르다. 키팅 선생님은 개인의 자유와 직관에 초점을 맞춘다. 입시 위주의 교육이 강요하는 틀을 거부하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가르침이다. 그에 반해 숀 선생님은 자아와 타아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지나친 공격성으로 타인에게 자꾸 폭력을 행사하는 천재 소년 윌에게 관계 맺기를 가르쳐주는 과정이 <굿 윌 헌팅>이라는 영화의 줄거리다.

그 과정에서 명대사가 등장한다.

“네 잘못이 아니야.” (It’s not your fault.)

보통 명대사는 딱 한 번 멋지게 등장하는데 이 대사만큼은 무한 반복으로 되풀이된다. 그래서 더 감동적이다.

자책과 공포의 왜곡된 표현으로 자꾸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윌에게 숀 선생님은 네 잘못이 아니라고 그를 위로한다. 그냥 한 번 던지는 위로가 아니다. 윌의 시선을 억지로 잡아둔 채 계속 말한다. 알았다고, 그만하라고 화를 내다가 폭발하는 윌의 반응에도 아랑곳없이 숀 선생님은 윌의 눈을 보며 반복한다. 네 잘못이 아니야.

결국 윌은 눈물을 터뜨리고 숀 선생님은 그런 윌을 넓은 품으로 품어준다.

최근 병영 내 폭력과 따돌림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물론 조직 내의 시스템과 관리감독도 점검해봐야 할 문제지만, 나는 인성교육이 근본적인 문제해결이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숀 선생님을 만나기 전의 윌이 우리나라에서 입대했다면 에이(A)급 관심사병이었을 것이다. 그를 감시하고 처벌하기 전에 치유해주는 과정이 먼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사회에는 수많은 윌이 있다. 일단 사고를 친 다음에는 잘못을 묻지 않을 도리가 없다. 사고를 치기 전에 누군가 다독여줘야 한다. 네 잘못이 아니라고. 그러니 공격을 멈추라고. 타인에 대한 공격도, 스스로에 대한 공격도.

나는 믿는다. 우리 사회에 수많은 윌이 있는 것처럼 수많은 키팅 선생님과 숀 선생님이 계실 것이라고.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과 도움을 주고 싶은 어른들을 이어주는 일이 우리 앞에 남아있다.

마지막으로 로빈 윌리엄스의 최근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 한 편을 추천한다. 그가 조연으로 출연한 <페이스 오브 러브>(2013년작). 주인공은 에드 해리스와 아넷 베닝. 담담하게 볼 수 있는 노년의 사랑이야기라 휴지까지는 필요 없다.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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