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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인터넷에 밀려난 영화 별점의 종가

등록 2014-08-21 18:57

듀나의 영화 불평
레너드 몰틴의 ‘무비 가이드’
<레너드 몰틴의 무비 가이드>가 2015판을 끝으로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지금의 한국 영화광에게 그의 이름은 큰 의미가 없다. 하지만 1969년부터 지금까지 그와 그의 팀이 1년에 한 번씩 업그레이드해 온 이 두툼한 책이 전세계 영화광에게 끼친 영향력은 만만치 않다.

수많은 사람들이 영화 별점 평가를 몰틴의 가이드북을 통해 처음 접했다. 그가 처음 만든 시스템은 아니었다. 최초의 영화 별점 평가는 192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몰틴 이전에도 <사이트 앤 사운드>나 <카이에 뒤 시네마>와 같은 쟁쟁한 매체에 의해 고정된 시스템이었다. 많이들 이런 별점 평가가 영화 평론이라는 작업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만든다고 생각하고, 그 의견은 옳다. 하지만 레너드 몰틴의 독자들, 그러니까 신문으로 텔레비전에서 하는 영화들 중 볼 것을 고르려는 관객들에게 이 책의 짧은 ‘캡슐 리뷰’와 별점(별 넷이 만점이다)은 유익했다. 나중에 비디오 대여점의 등장으로 일반 관객들의 영화 지평이 넓어진 뒤로 그 유용성은 더 커졌다. 모두가 그 책의 판단에 동의하는 건 아니었다. <택시 드라이버>에게 별을 두 개 주고 <블레이드 러너>에 별 한 개 반을 준 책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동의하는 책처럼 무의미한 건 없다.

<레너드 몰틴의 무비 가이드>의 쇠퇴를 가져온 건 지나치게 미국 위주이고 보수적인 책 내용이 아니라, 인터넷의 탄생이었다. 몰틴의 책이 추구했던 것은 가능한 모든 영화 정보를 모은 백과사전, 그러니까 작은 우주였다. 하지만 월드 와이드 웹이 태어나고 인터넷 무비 데이터베이스와 로튼 토마토가 생기자 인터넷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순식간에 그의 팀을 앞서갔다. 더는 책 한 권에 압축된 캡슐 리뷰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새 영화들이 만들어지고 옛 영화들이 발굴되고 그들에 대한 정보가 쌓이면서 몰틴의 책은 ‘모든 것’을 담으려는 시도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이 되어주는 ‘주관적 일관성’도 인터넷에 자신의 리뷰 데이터베이스를 공개한 고 로저 이버트와 같은 평론가를 따라가기 어려웠다. <무비 가이드>는 인터넷 무비 데이터베이스와 합작하기도 하고 스마트폰 앱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어느 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무비 가이드>의 존재는 너무나도 당연했기에 이 시리즈의 종말을 예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이 뉴스에 정말 놀란 사람이 없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무비 가이드>는 개념 자체가 인터넷 이전 세대에 속해 있었다.

듀나 칼럼니스트
듀나 칼럼니스트
몰틴의 책이 직접 번역된 적은 없었지만, 과거의 우리나라 영화광들은 그의 책을 꾸준히 인식하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상하게 들리지만, 이전 세대의 스타 영화평론가 정영일은 신문에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주말의 영화를 소개할 때마다 자신의 것 대신 몰틴의 별점을 소개했다. 아무리 뒤져도 구할 수 있는 정보가 오로지 몰틴의 별점 리뷰밖에 없는 영화들도 만만치 않았다.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질과 양의 한계 때문에 실패로 끝났지만 몰틴의 가이드를 모방하려는 책도 있었다. 레너드 몰틴과 그의 책에 대해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포털 사이트 영화 섹션에서 별점을 주고 20자 평으로 촌철살인을 시도하는 관객들은 알게 모르게 그의 그림자 아래에 있다.

듀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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