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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흔한 함정’에 빠져버린 실화 영화

등록 2014-09-18 19:54

듀나의 영화 불평
10월2일 개봉하는 임순례 감독의 <제보자> 시사회가 지난 화요일에 있었다. 영화의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긴 조금 이른 시기지만 이미 전국민이 다 알고 있는 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작품이니, 큰 문제가 될 거라고 보지는 않는다.

그 ‘전 국민이 다 아는 사건’이란 황우석 박사와 줄기세포 스캔들이다. 물론 공식적으로 이 영화는 허구이다. 황우석은 이장환이라는 이름의 과학자로 바뀌었고 박해일이 연기한 방송사 피디도 허구의 인물이다. 하지만 엔드 크레디트 끝에 뜨는 “이 사건은 모두 허구이며 인물과 사건의 유사성은 우연이다”라는 설명은 괴상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 영화의 이장환이 황우석과 닮은 건 결코 우연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가 허구의 형식을 취한 것은 이해가 된다. 아무리 드라마틱하다고 해도 현실의 이야기는 다루기가 어렵다. 분명한 주인공이 없고 선악이 쉽게 갈리지도 않으며 이야기가 감독이 품고 있는 주제에 쉽게 복종하지도 않는다. 이런 경우 현실에서 ‘모티브’를 따와 새롭게 이야기를 쓰는 건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하지만 여기엔 문제가 있다.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지나치게 쉬워지는 것이다. 실화 모티브의 영화는 쉽게 장르화된다. 그냥 실화 영화여도 시나리오 작가는 소재로 삼은 사건을 장르의 눈으로 볼 가능성이 크지만 ‘모티브’만 따온다면 장르에 대한 복종은 훨씬 기계적이 된다.

<제보자> 역시 그 함정에 빠진다. 영화 자체는 재미있다. 쓸데없이 캐릭터 만든다고 뜸들이는 일 없이 본론으로 들어가는 빠른 영화이고 긴장감도 상당하지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떤 기계적인 플롯이 영화를 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외압에 맞서 싸우는 정의로운 언론인’ 장르의 공식이다. 이런 영화들은 상당수가 실화이며 각색되기 전의 실화 상당수가 정말로 ‘외압에 맞서 싸우는 정의로운 언론인’ 이야기의 틀에 맞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말로 그 장르를 의식하며 영화를 만들기 시작하면 현실과 주제 사이에 놓인 날카로운 긴장감을 잃어버리게 된다. 어떻게 이야기를 꾸려도 장르 공식은 결국 영화를 결말까지 인도할 것이니까.

몇몇 디테일도 걸린다. 예를 들어 전문지식이 많이 나오는 한국 영화들이 대부분 그렇듯, <제보자>의 배우들은 애를 좀 먹는다. 전문용어를 구사하는 것도 힘이 들고, 거기에 연기 디테일을 얹는 것도 힘들다. 하지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시대배경의 묘사이다. 이 영화는 10년 전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그냥 현대를 무대로 하고 있다. 구체적인 날짜가 나오는 건 아니지만 주인공들이 들고 다니는 모바일 기기를 보면 알 수 있다.

이건 두가지 면에서 신경이 쓰인다. 우선 생명공학은 발전 속도가 빠른 분야로 황우석 스캔들 이후 이 분야에서는 많은 연구가 있었다. 여기서 10년 차이를 완전히 무시한다면 묘사되는 사건은 현실세계와 어긋나게 된다. 둘째, 황우석 스캔들이 일어났던 2005년과 지금의 정권은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당시의 사건을 지금 정권에 얹어 이야기를 풀어간다면 관객들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제보자>는 과학보다는 언론 정의에 대한 영화이고 이러한 시대 변경은 여기에 맞추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마 영화는 10년 전에는 자기 역할을 했던 특정 방송사와 프로그램의 무력함에 대해 이런 식으로나마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이 올바른 도구였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듀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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