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모르지만 당신을 원해요 - 원스
최근 영화계에 기현상이라고까지 불리는 일이 있었다. 영화 <비긴 어게인>이 300만 관객을 돌파한 것이다. 영화 <명량>이 1700만명을 훌쩍 넘긴 판에 300만명이 무슨 대수냐고 할 수 있지만 <비긴 어게인>의 흥행 성공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스크린을 장악하는 대형 배급사의 지원 사격 없이, 그야말로 입소문만으로 만들어진 흥행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도 참 좋지만, 오늘은 존 카니 감독의 전작, <원스>에서 명대사를 하나 소개해본다.
당신을 모르지만 당신을 원해요.(I Don’t know you but I want you.)
엄밀히 말하면 이 말은 대사가 아니라 영화 속에서 남녀 주인공들이 불러 큰 인기를 끌었던 노래 ‘폴링 슬롤리’의 가사다.
존 카니 감독은 영화와 음악을 조화시키는데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음이 틀림없다. 길거리 뮤지션과 가난한 이민자 여성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 이 영화에서 두 주인공의 대사는 하나같이 일상적이고 담백하다. 당신의 아름다운 눈동자를 위해 건배! 식의 간질간질한 대사는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덕분에 영화는 애틋함이라는 정서를 오롯이 지켜낼 수 있었다. 대신 주인공들의 감정을 드러내는 역할은 노래가 맡고 있다. 매우 영리한 작전.
당신을 모르지만 당신을 원한다는, ‘폴링 슬롤리’의 첫 가사는 단숨에 주인공들의 감정을 로맨스로 바꿔놓는다. 나란히 앉아 피아노를 치며 이 가사를 노래하는 순간, 그들은 정말 서로를 원하게 된다.
모름지기 사랑의 시작이란 그런 것이다. 모르지만 원하는 감정. 논리 따윈 없다. 당신의 사랑을 한번 돌이켜보라. 사랑이 싹트기 시작했을 때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정말 그렇다. 오묘한 비논리의 전개 과정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똑같아서, 우리말로도 사랑에 ‘빠진다’는 표현이 영어에도 그대로 있다. 폴 인 러브(Fall in love). 사랑이란 빠지는 것이다. 풍덩.
그런데 막상 영화 <원스>의 남녀는 격정적인 관계로 발전하지 않는다. 서로를 원하고 좋아하는 것만은 분명한데 영화 내내 그 감정을 억누르느라 애쓴다. 심지어 체코 출신인 여주인공이 체코어로 사랑 고백까지 슬쩍 하는데도 둘의 관계는 절대 선을 넘지 않는다. 이 부분이 <원스>를 특별하게 만드는 지점이다. 사랑에 ‘빠진’ 남녀가 허우적대지 않는다는 것. 단순히 여자가 유부녀여서일까?
존 카니 감독의 두번째 영화인 <비긴 어게인>에도 비슷한 정서가 흐른다. 이번에는 <원스>와 반대로 남자에게 가정이 있다. 역시 음악을 통해 둘의 감정이 로맨스로 발전하지만 <원스>처럼 선을 넘지 않는다. 둘의 사랑을 응원하는 관객들을 약만 올리고. 약이 잔뜩 오르면서도 기분이 흐뭇한 걸 보면 감독의 실력이 보통은 아닌 게 틀림없다.
지금 하고 있는 사랑이, 또는 경험했던 사랑이 논리적이었다고 해도 억울해할 필요 없다. 장담컨대 그 사람을 원하는 이유와 논리를 그대가 애써 만들어낸 것일 테니.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을 뿐 인간의 본능이다. 괴물보다 괴물이 숨어 있는 어둠을 더 무서워하듯 무지의 상태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나는 이러이러해서 그 사람을 원해, 라고 논리를 만들어주면 조금 덜 두려우니까.
멜로영화 보기 좋은 계절이다. <원스>는 굿 다운로드나 케이블 티브이를 통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밥 한 끼도 안 되는 돈으로 감정의 진수성찬을 드셔보시길.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