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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장르화’되어버린 학교폭력 문제

등록 2014-10-09 20:31

[문화‘랑’] 듀나의 영화 불평
지난 주 방영된 <한국방송>의 드라마 <하이스쿨: 러브 온>에서 가장 큰 화제는 두 주인공 이슬비와 신우현이 찜질방에서 ‘풍선껌 키스’를 했다는 것이다. 둘 중 한 명이 미성년자이고 둘의 나이 차가 상당히 나긴 하지만 이건 그렇게 호들갑 떨 일은 아니다.

오늘 다룰 소재는 이 드라마의 학교폭력 묘사이다. 지금까지 이 드라마는 성폭행과 성추행을 제외하고 고등학교에서 일어날 법한 거의 모든 종류의 폭력을 다루었다. 그중 가장 강도 높게 다루어진 것은 같은 반 아이들의 모함에 몰린 주인공 이슬비가 집단 따돌림의 희생자가 되는 이야기였는데, 이 역시 지금까지 이 드라마가 다룬 폭력 리스트의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하이스쿨: 러브 온>을 선택한 시청자들 중 이런 학교폭력 이야기를 기대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라 믿는다. 이 드라마는 일차적으로 주인공이 하늘에서 실수로 떨어진 천사이고 아이돌 배우가 최소한 네 명이나 나오는 판타지이다. 당연히 달짝지근한 로맨스가 먼저이고 학교폭력과 사회 비판은 나중이다. 하지만 도입부부터 학교폭력은 이 드라마에서 떨어져 나갈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 되어가고 있다.

고등학교가 무대인 드라마가 학교폭력을 다루었다고 문제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고의적으로 그 묘사를 지워낸다면 오히려 의도적인 회피처럼 보여 더 눈에 뜨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폭력에는 논리로 충분히 변호하기 어려운 단순함과 냉담함이 있다. 특히 일진 삼총사 아이들의 반복적인 폭력에는 분노도 슬픔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예상보다 많은 시청자들이 이런 무관심에 동조하고 있다는 흔적도 보인다.

다시 말해 이들은 ‘장르화’되어 있다. 작가가 이 주제에 대해 열심히 공부했거나 이런 주제에 대해 심각하게 이야기해야 할 필요성이 있어서 넣은 게 아니라 고등학교 무대인 드라마에서 이런 이야기를 넣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넣었는데, 충분한 공감 없이 기성품 재료를 가져와 강도만 높여가고 있는 것이다. 보아하니 나중엔 가해자 애들도 사연이 있는데… 식으로 이야기를 끌어갈 모양인데, 이것만으로는 폭력 묘사의 무심함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이것은 <하이스쿨: 러브 온>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느 때부터 학교폭력은 중요한 주제의 단계를 넘어 뭔가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지만 그에 대해 직접적인 이해가 없는 이야기꾼의 단골 소재가 되어버렸다. 당연히 아무리 강도를 높여도 ‘진정성’에 도달하기는 어렵다. 진짜 작가가 진정성을 담는다고 해도 야오이물에서 동성애 인권을 외치는 것처럼 어색해 보인다.

이 폭력은 드라마가 끝날 무렵엔 어떻게 해결이 될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있었던 적도 없었던 것처럼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증발해 버린 이슬비의 집단 따돌림 에피소드를 보아하니 다른 이야기의 해결책에도 큰 기대를 하긴 어렵다. 더 괴상한 건 그래도 천사인 이슬비가 이런 학교의 문제점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멋진 인생>, <천사 조나단>, <천사의 손길>에 나오는 적극적인 천사들의 전통에 익숙한 나에겐, 이슬비의 이런 방관적인 태도가 갑갑하기 짝이 없다. 이 땅에선 이미 천사들도 이런 반복되는 이야기에 면역이 되어버린 걸까.

듀나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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