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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부부싸움은 ‘이야기 전쟁’

등록 2014-10-28 19:59

듀나의 영화 불평
지난 주에 개봉된 데이비드 핀처의 <나를 찾아줘> 이야기를 할 텐데, 스포일러 노출이 있을 수도 있으니 앞으로 보실 분들은 알아서 피해주시길 바란다.

줄거리만 읽어도 아시겠지만, <나를 찾아줘>는 <사랑과 전쟁>에 나올 법한 막장극이다. 하지만 아무리 막장이라고 해도 우리가 그들에게서 배울 것이 없는 건 아니다. <나를 찾아줘>의 주인공들은 우리나라 관객들에게 가르쳐 줄 것이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다. 너무 많아서 시리즈로 갈 수도 있겠지만, 오늘은 단 하나만 이야기하기로 한다. 바로 위기관리와 위기대책이다.

<나를 찾아줘>는 영화 전편이 하나의 커다란 부부싸움이다. 단지 이들의 싸움은 매스컴으로 연결되어 전국민의 관심사가 되어 있다. 당연히 매스컴을 통해 사람들의 생각을 어떻게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리느냐에 싸움의 승패가 달려있다. 이들은 모두 자기에게 유리한 이야기를 만들어 상대방을 그 안에 빠트리려 한다. 상대방의 이야기에 걸려 넘어지면 반박하는 것만으론 소용이 없다.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더 나은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나를 찾아줘>에서 가장 시니컬한 부분은 이 이야기의 전쟁에서 진실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영화 후반부에 남편 닉과 주변 사람들은 아내 에이미에 대한 완벽한 진실에 도달하지만 이는 닉에게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한다. 심지어 에이미도 그 사실을 알고 있어서 그걸 굳이 감추려고 하지 않는다. 남편이 진실을 안다고 해서 사정이 더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에이미에게는 더 큰 보호막이 있다. 그건 대중을 사로잡을 수 있는 더 매력적인 이야기이다. 닉 자신도 그 사실을 알 수밖에 없으니, 그가 그나마 자기에게 유리하게 사건을 주도할 때 그에게 도움을 주었던 것은 진실 자체가 아니라 그 진실을 가공해 만든 인위적인 캐릭터와 거짓말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위기대처방법은 기본적으로 스토리텔링이다. 진실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더 좋은 이야기가, 더 그럴싸하게 포장한 이야기가 살아남는다.

스토리텔링 면에서 우리나라의 위기 대처는 거의 재앙이다. 예를 하나 들어볼까. 얼마 전 부분 개장한 롯데 월드타워점에서는 금이 간 콘크리트 바닥 때문에 난리가 났다. 나중에 롯데에서는 3080의 서울 분위기를 내기 위해 일부러 그랬다고 발표한다.

진실여부는 모른다. 심지어 진실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이 이야기가 잔뜩 시니컬해진 대중에게 먹힐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지어낸 것이라면 형편없는 이야기이고, 사실이라면 역시 묻어두었어야 할 한심한 이야기다. 그리고 지난 1년 동안 우린 비슷한 수준의 이야기의 잔뜩 접했다. 아이돌 그룹 멤버의 논란에 대한 답변부터 질소 과자에 대한 변명까지, 이들의 공통점은 캐릭터, 주제, 당위성, 무엇보다 대중의 감수성을 무시한 엉터리 이야기라는 것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좋은 이야기꾼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라 전체가 형편없는 변명으로 도배가 되는 상황이라면 우린 그들을 묶는 공통된 이유를 찾아야 한다. 왜 훌륭한 이야기가 부족할까. 그건 좋은 이야기를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자기가 아무리 형편없는 이야기를 하더라도 밑에서 알아서 호응해줄 거라고 믿는 사람들이 이 사회를 이끌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좋은 이야기의 부족은 앞으로 우리가 마주치게 될 더 끔찍한 무언가의 징조에 불과한 게 아닐까. 적어도 이것이 지금 여러분에게 들려줄 수 있는 가장 그럴싸한 이야기다.

듀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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