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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대종상 수상작을 말해보시오

등록 2014-11-25 19:14

듀나의 영화 불평
아무도 대종상 따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 며칠 전에 상을 받은 사람들은 한동안 기분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대종상이 그들의 경력이나 위치에 대단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도 아니다. 최근 들어 ‘대종상 수상자’나 ‘대종상 수상작’이란 표현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없을 것이다. 관심있는 사람도 없고 폼도 나지 않기 때문이다.

대종상 작품상 수상작을 아무거나 말해보라. 다섯 편 이상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업계 내부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나는 검색하기 전에 단 두 편만을 정확히 기억할 수 있었다. <신기전>과 <애니깽>. 모두 대종상 역사에서 그리 바람직한 순간은 아니다. 검색해보니 수많은 멀쩡한 영화들이 리스트에 있다. <살인의 추억>, <시>, <가족의 탄생>, <추격자> 기타 등등, 기타 등등. 모두 좋은 영화들이다. 하지만 이들의 평가는 대종상 수상과 아무 상관이 없다. 이들이 기억되고 예찬된다면 그건 그냥 영화가 좋기 때문인데, 대종상은 심지어 그 ‘좋음’을 증명하는 무언가도 되지 못한다.

개선될 수 있는 상황일까? 올해도 시상식이 끝나자 많은 사람들이 수상 결과에 대해 불평을 하고 나섰다. 나 역시 상을 받으면 좋을 것 같은 후보자들이 몇 명 있어서 오래간만에 생중계를 봤고 그들 모두가 다 떨어졌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수상자를 내면 영화상의 평가가 더 나아질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위의 작품상 수상작 리스트를 참고하라. 상을 제대로 준다고 대종상의 평가가 더 좋아지는 건 아니다. 반대의 예를 든다면 칸 영화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수많은 말도 안 되는 영화들에 상을 주어왔지만 여전히 칸 영화제다. 그리고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시상식이 어디에 있는가.

대부분 사람들에게 대종상이란 나이와 벼슬 이외엔 내세울 게 없는 ‘실없는 노인네’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업계 내부 사람들이라면 대종상의 이 초라한 평판이 결코 자랑스럽다고 할 수 없는 이 행사의 초라한 역사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마도 일부는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조차도 기억하지 못한다. 사람들이 대종상을 경멸하는 것은 역사 때문이 아니라 시상식 자체가 교장 선생의 아침 조회나 훈화 방송처럼 멋없고 지루하고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의무교육을 받은 정상적인 사람들은 모두 이런 것들을 증오한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대종상에 대한 기대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다. 원래부터 대종상을 의미있는 무언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극소수이니 그 방향으로 조금만 더 밀면 된다. 그럼 모두가 마음이 편해진다.

그게 싫다면 다른 방법이 있다. 행사에서 어떻게든 교장 선생과 훈화 방송의 흔적을 지우라. 현역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관객들은 이름도 잘 모르는 원로들은 될 수 있는 한 안 보이는 곳에 숨기라. 원로들 역시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영화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을 존경할 거라는 착각 따위는 거두고 알아서 숨는 게 낫다. 물론 그들은 그러지 않을 것이다.

듀나 칼럼니스트
듀나 칼럼니스트
그것도 안 된다면, 시상자들이 어설픈 아부와 영화 홍보로 시간을 잡아먹지 않도록 제대로 된 각본을 주고 행사 뛰는 아이돌보다 나은 유흥을 준비하라. 무엇보다 시상식을 하나로 묶을 스토리텔링을 찾으라. 그래도 사람들은 수상 결과에 만족하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더 나은 두 시간을 보낼 것이다. 시상식이란 무엇보다 쇼가 아닌가.

듀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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