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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아버지, 이만하면 참 잘 사셨습니다

등록 2014-11-25 19:38수정 2014-11-25 19:38

<해운대>로 1100만 관객을 모은 윤제균 감독의 5년 만의 신작 <국제시장>은 격변기 현대사 속에서 가족을 위해 자신을 버리고 희생해온 우리 아버지들에게 바치는 헌사다.  제이케이필름 제공
<해운대>로 1100만 관객을 모은 윤제균 감독의 5년 만의 신작 <국제시장>은 격변기 현대사 속에서 가족을 위해 자신을 버리고 희생해온 우리 아버지들에게 바치는 헌사다. 제이케이필름 제공
내달 개봉 앞둔 영화 ‘국제시장’
한국전쟁·파독광부·베트남전쟁…
1950~1980년대 온몸으로 겪으며
당신 인생은 못 살고 희생만 하던
우리 시대 아버지께 바치는 헌사
영화 <국제시장>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가족을 위해 굳세게 살아온 그때 그 시절, 가장 평범한 아버지의 가장 위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라는 영화 홍보 글귀에서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에피소드들이 펼쳐진다. 줄거리만 놓고 보면 다소 진부하고 뻔하기까지 하다. 그런데도 묵직한 힘이 느껴진다. 깊은 울림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우리의 장삼이사 아버지들이 겪어왔을 법한 이야기에는 ‘전형성’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는 ‘진정성’이 짙게 배어있기 때문이리라.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영화 시작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카메라는 1950년 함경남도 흥남부두를 비춘다. 남하하는 중공(중국)군의 공세에 밀려 미군과 한국군은 철수를 결정한다. 미 군함과 상선이 무기를 버리고 피난민을 태우기로 결단을 내리자 엄청난 인파가 배에 오르느라 북새통을 이룬다. 덕수 가족도 피난길에 나선다. 하지만 아수라장 속에 아버지(정진영)와 여동생이 배에 오르지 못해 생이별을 하게 된다.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어머니(장영남)와 어린 덕수, 두 동생은 부산 국제시장의 덕수 고모(라미란)네 가게로 간다. 이곳에서 청년으로 훌쩍 성장한 덕수(황정민)는 아버지 대신 가장 노릇을 하며 가족들 생계를 책임진다. 돈 버느라 학교도 못 다니고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처지의 덕수는 동생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고자 큰 결심을 한다. 독일로 건너가 광부로 일하기로 한 것이다. 독일에서 덕수는 간호사로 파견온 영자(김윤진)를 만난다. 이역만리에서 서로 의지하던 둘은 가까워지고, 우여곡절 끝에 고국으로 돌아와 백년가약을 맺는다.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덕수는 또 한 차례 큰 결단을 내린다. 생활자금과 동생 결혼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이번에는 베트남전 기술근로자를 자원한 것이다. 영자는 덕수를 말린다. “이제는 남이 아니라 당신을 위해서도 한 번 살아보라구요. 당신 인생인데 왜 그 안에 당신은 없냐고!” 이 말을 뒤로 하고 덕수는 기어이 전쟁터로 향한다. 죽음의 그림자는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는다. 해병대 청룡부대원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한 가수 남진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지는 대목도 나온다. 젊은 남진을 같은 가수인 정윤호(동방신기의 유노윤호)가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연기해 잔재미를 준다.

이런 잔재미는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영화에 웃음과 생기를 불어넣는다. 덕수와 평생을 함께하는 죽마고우 달구(오달수)는 ‘웃음 제조기’ 임무를 충분히 해낸다. 남진 말고도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 김, 씨름 선수 이만기의 옛 시절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파독 광부 선발 면접장에서 덕수가 갑자기 애국가를 불러 모든 이들의 합창으로 번지는 장면이나 덕수와 영자가 공원에서 싸우다 때마침 벌어진 국기강하식에 어정쩡하게 국민의례를 하는 장면은 쓴웃음을 자아낸다.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격변의 현대사 중 단연 가슴을 울리는 장면은 1983년 <한국방송>의 이산가족찾기 운동이다. 한국전쟁으로 흩어진 혈육을 찾으려는 이산가족들의 절절한 몸부림을 담은 실제 영상자료는 그 어떤 픽션보다도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 흥남철수 때 헤어진 아버지와 동생을 찾는 덕수의 사연도 이 대목에서만은 논픽션이 된다. 이들의 아픔은 한반도 온 국민의 아픔으로 전이된다.

세월이 흘러 70대 노인이 된 덕수. 왁자지껄한 가족 모임에서 혼자 조용히 빠져나와 방으로 들어간다. 아버지 사진을 보며 말을 건넨다. “아버지,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요. 근데 나 진짜 힘들었거든요.” 아버지 앞에서만 꽁꽁 싸매온 속을 터놓고 끝내 오열하는 덕수의 모습은 그 순간, 우리 모두의 아버지와 겹친다.

‘이산가족 찾기’ 실제 영상에 눈물
유노윤호, 남진 역 사투리 연기 구수
영화 속 황정민·김윤진 배역 이름
윤제균 감독의 부모한테서 따와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국제시장>은 2009년 <해운대>로 1100만 관객을 모은 윤제균 감독이 5년 만에 연출한 작품이다. 윤 감독은 “우린 지금 신구세대 간 이해와 배려가 부족한 시대를 살고 있다. 이 영화를 통해 젊은 세대는 어르신 세대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게 되고, 어르신들은 옛 생각을 하며 젊은이들을 배려하고 소통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만 현대사에서 유독 정치적인 부분만 쏙 빼놓은 건 아쉽다. 윤 감독은 이와 관련해 “시대의 화두를 보면 1960~70년대에는 경제화였고, 80년대 이후 민주화였다. 1950~80년대 현대사를 다루면서 선택과 집중 차원에서 정치 부분을 빼고 허리띠를 졸라매는 부분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영화 속 덕수와 영자는 윤 감독의 실제 부모 이름이기도 하다. 극중 이름을 이렇게 붙인 이유를 묻자 윤 감독은 그제야 털어놨다. “아버지가 대학교 2학년 때 돌아가셨어요. 그때 감사하다는 말씀을 못 드렸거든요. 영화로나마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갑자기 목이 멘 윤 감독의 눈에서 눈물이 한동안 멈출 줄을 몰랐다. 12월17일 개봉.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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