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소더스>의 한 장면. 사진 올댓시네마 제공
[리뷰]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엑소더스’
‘인터스텔라’ 대항마 꼽혔지만
모세 캐릭터 설득력 떨어지고
160분간 반복된 스펙터클 피곤
‘인터스텔라’ 대항마 꼽혔지만
모세 캐릭터 설득력 떨어지고
160분간 반복된 스펙터클 피곤
‘비주얼은 창대하였으나, 그 드라마는 실로 미약했다.’
<글래디에이터>, <블랙호크 다운>, <프로메테우스>, <블레이드 러너>의 명장 리들리 스콧 감독이 내놓은 신작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사진)은 올해 ‘할리우드 성경 바람’의 끝판왕으로 불리며 개봉 전부터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최고의 배우 크리스찬 베일, <쉰들러 리스트>의 각본을 쓴 스티븐 자일리안, <글래디에이터>의 의상을 맡은 잔티 예이츠 등 쟁쟁한 스태프의 참여 소식은 대중의 관심을 더욱 끌어올렸다. 특히 한국에서는 흥행질주를 계속하고 있는 <인터스텔라>의 ‘유일한 대항마’로 꼽혀왔다. 하지만 뚜껑을 연 <엑소더스>는 화려함으로 치장했지만 알맹이는 텅 빈 ‘요란한 수레’라는 느낌이다.
<엑소더스>는 기본적으로 구약성서의 ‘출애굽기’를 기본 줄기로 한다. 기원전 1300년 경. 이집트로 들어간 이스라엘 민족(히브리)은 강제노역에 시달리며 파라오의 박해를 받는다. 히브리인의 아들인 모세는 파라오의 아들 람세스와 이집트 왕실에서 형제처럼 자라난다. 람세스보다 더 훌륭한 ‘왕재’인 모세는 어느날 자신이 왕족이 아니라 노예인 히브리인임을 깨닫게 되고, 결국 성경의 예언처럼 이집트에 대항해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향한다는 내용이다.
성경의 내용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리들리 스콧 감독은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각색하려 한다. 성경과 달리 영화 속 모세는 ‘인간적인 갈등’에 휩싸인다. 히브리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신을 만난 뒤에도 신을 맹신하지 않는다. ‘이집트에 의한 400년 핍박’을 이유로 10가지 재앙을 내리는 신에게 그는 “잔인한 복수일 뿐”이라며 반대 의견을 밝힌다. 또 람세스에게 찾아가 “오늘밤 아들을 잃을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친절한 경고’도 해준다.
문제는 모세를 입체적 인물로 그려내면서도 성경의 고갱이는 거스르지 않으려다보니 스토리가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모세가 아내(십보라)와 아들(게르솜)을 버려둔 채 이집트로 돌아갈 정도로 신의 부름에 복종하면서 방법론에서는 신과 계속 갈등을 겪는 이유가 분명치 않다. 신을 향해 ‘복수와 폭력에 반대한다’고 말하지만 그가 이집트인에게 가하는 폭력 역시 잔인하기는 매한가지다. 복종치 않는 모세를 신이 선택한 이유도 이해가 안 된다. 모세 외에 여호수아, 람세스 등 다른 주요 인물의 역할과 캐릭터를 잘 살리지 못한 점도 아쉽다.
볼거리는 차고 넘친다. 피라미드, 스핑크스, 맴피스 궁전 등 화려한 문명을 자랑했던 고대 이집트의 모습을 고스란히 재현해 마치 보는 내내 시공을 초월한 여행을 하는 기분을 선사한다. 40만명이 넘는 히브리 노예들의 노동 장면, 히타이트를 상대로 벌이는 대규모 전투신, 성경에 묘사된 10가지 재앙, 하이라이트인 홍해 장면 등은 압도적인 스케일을 자랑한다.
하지만 2시간40분 동안 과시하듯 반복되는 스펙타클은 도리어 눈을 피곤하게 만든다. 아무리 창대한 비주얼이라도 단단하지 못한 드라마에 얹혀지니 중간중간 지루하기 짝이 없다. 인류 기원에 대한 흥미로운 가설을 보여준 <프로메테우스>(2012)의 새로움과 신선함, 영웅에서 노예로 추락한 남자의 복수극 <글레디에이터>의 잘 짜여진 플롯 등 전작들의 장점을 쏙 빼놓은 채 ‘보여주기’에만 치중한 결과다. 3일 개봉.
유선희 기자, 사진 올댓시네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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