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이 순간이 오고야 말았다. 무려 13년에 걸친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다. 피터 잭슨 감독의 중간계 시리즈 마지막 편인 <호빗: 다섯 군대 전투>가 17일 개봉한다.
때는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악의 세력이 노리는 ‘절대 반지’를 파괴하기 위해 머나먼 여정을 떠나는 이들의 모험담을 그린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는 그해 마지막 날인 12월31일 개봉해 국내 관객들에게 커다란 충격과 신드롬을 불러 일으켰다. 중간계라는 상상 속 세계에서 호빗, 인간, 요정, 난쟁이 등 다양한 종족들이 펼쳐내는 이야기는 그 어떤 신화보다도 깊이 있고 흥미진진한 대서사시였다. 정확히 1년 뒤인 2002년 말 개봉한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에 이어 2003년 말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으로 시리즈가 마무리되자 많은 이들이 아쉬워했다.
그로부터 9년 뒤인 2012년, 피터 잭슨은 <호빗: 뜻밖의 여정>을 들고 중간계 시리즈로 돌아왔다. <반지의 제왕> 주인공인 호빗족 프로도 배긴스의 삼촌 빌보 배긴스의 젊은 시절 모험담을 영화로 풀어낸 것이다. <반지의 제왕>보다 개봉은 뒤에 하면서도 그보다 앞선 얘기를 다루는 ‘프리퀄’인 셈이다. 2013년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에 이어 이번에 마지막 편 <호빗: 다섯 군대 전투>가 관객들을 만난다.
영화의 원작으로 치면, 무려 77년 전인 193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의 언어학자인 J. R. R. 톨킨(1892∼1973)은 자신의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기 전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묶어 <호빗>이라는 책을 냈다. 이후 <호빗>의 세계관을 점차 확장시켜나가 <반지의 제왕>이라는 대서사시를 만들어냈다. 출간 이후 38개 나라 언어로 번역돼 전 세계에서 1억부 넘게 판매된 <반지의 제왕>은 판타지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다.
반지의 제왕부터 호빗까지…
시리즈별로 동시촬영 ‘초유의 방식’
스펙터클·긴박한 전개로 관객 잡아
호빗3 마지막 장면 ‘반지…’에 연결
간달프·레골라스 재등장 반가워
다섯 종족과 목숨 건 전투신 화려
뉴질랜드의 십대 소년 피터 잭슨도 톨킨의 열렬한 독자 중 하나였다. 그는 마치 중간계와 같은 풍광의 뉴질랜드 대자연을 기차로 여행하며 톨킨의 중간계 이야기를 읽고 상상 속 세계에 푹 빠져들고 말았다. 소설을 반드시 영화화하고야 말겠다고 결심했다. 영화 감독이 된 그는 <호빗> <반지의 제왕> 순서로 영화화하려 했으나, 결과적으로 <반지의 제왕>을 먼저 만들게 됐다. 뉴질랜드의 광활한 대자연을 배경으로 <반지의 제왕> 1~3편을 한꺼번에 찍어 1년에 한 편씩 개봉하는 초유의 방식을 택했다. <호빗> 역시 마찬가지 방식으로 제작·개봉했다.
처음부터 성인을 겨냥하고 방대하게 집필한 <반지의 제왕>과 달리 <호빗>은 아이들을 위한 동화에 가까웠다. 하지만 피터 잭슨은 이런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얘기를 <반지의 제왕> 못지 않게 스펙터클하고 큰 규모의 영화로 만들어냈다. 그러다 보니 부작용도 있었다. 비교적 단순한 이야기를 길게 늘여놓은 <호빗> 1편과 2편은 밀도가 다소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왔다. 2편에서 새로운 캐릭터인 용 스마우그가 나와 1편보다 긴장감이 높아졌다는 평가가 그나마 위안이었다.
이번에 선보이는 3편은 이전의 비판과 우려를 대번에 날려버린다. 스마우그와의 한판 승부에 이어, 무주공산이 된 에레보르를 차지하려는 다섯 종족의 치열한 전투 장면들이 144분의 상영시간 동안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의 최후의 전투 장면과 겹쳐지기도 한다. 액션 위주로 전개되기 때문에 굳이 전편들을 복습하지 않아도 영화를 즐기기에 무리가 없을 듯하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자연스럽게 <반지의 제왕> 앞 부분과 연결된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인물들도 대거 등장해 반가움을 더한다. 회색의 마법사 간달프(이안 맥켈런), 금발의 요정 레골라스(올랜도 블룸), 요정 왕 스란두일(리 페이스), 갈라드리엘(케이트 블란쳇), 뒤에 사우론의 하수인이 되는 마법사 사루만(크리스토퍼 리) 등을 모두 만나볼 수 있다. 젊은 빌보 배긴스를 연기한 마틴 프리먼과 용 스마우그의 목소리와 모션 캡처를 연기한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영국 <비비시>(BBC)의 화제작 드라마 <셜록>에서 셜록(베네딕트 컴버배치)과 왓슨(마틴 프리먼) 콤비로 호흡을 맞춘 데 이어 이번 영화에서 또 만났다.
<호빗: 다섯 군대 전투>를 보고 난 뒤 더는 중간계 시리즈 영화가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서운해할 수도 있다. 톨킨이 세상을 뜨기 전 마지막 순간까지 집필하고, 사후 아들이 정리해 출간한 <실마릴리온>이 남아 있기는 하다. 하지만 흡사 성경처럼 내용이 워낙 방대한데다 아들이 영화화에 대한 허락을 하지 않아 극장에서 <실마릴리온>을 만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마음은 누구나 같지 않을까? 영화 속 빌보와 프로도처럼.
서정민 기자, 사진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