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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징하게? 사랑 쿨하게? 영화로 보는 무지개색 사랑만들기

등록 2005-09-28 17:16수정 2005-09-29 14:05

징하게? 사랑 쿨하게? 영화로 보는 무지개색 사랑만들기
징하게? 사랑 쿨하게? 영화로 보는 무지개색 사랑만들기
[100℃커버스토리] 멜로영화 핫&쿨

멜로영화의 계절, 가을이다. 올 가을 충무로에는 여느 때보다 멜로 영화의 수확이 풍성하다. 지난 23일 개봉한 <너는 내운명>(박진표 감독)이 개봉 첫주 전국 관객 91만명을 동원하며 화려하게 ‘신파 멜로의 귀환’을 신고했는가 하면 29일 개봉하는 <사랑니>(정지우 감독)는 이 장르의 지평을 넓힌 쿨한 멜로의 수작이라고 찬사받고 있다.

‘쿨한 멜로’와 ‘징한 멜로’(혹은 ‘신파 멜로’)의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지만 몇가지 영화적 장치로 그 차이를 구별해 볼수는 있다. 쿨한 멜로의 주인공이나 징한 멜로의 주인공이나 사랑에 상처입고 아파하지만 전자의 인물이 감정이나 행동의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다면 후자의 인물은 목놓아 울부짖는다. 전자의 주인공이 파트너에게도 거리를 두는 스타일이라면 후자의 주인공은 이유나 핑계거리를 만들지않고 헌신한다. 그런 점에서 신파멜로의 주인공이 계몽적인 캐릭터라면 쿨한 멜로의 주인공은 열정적이지는 않지만 민주적인 캐릭터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런 상반되는 성격을 극단으로 밀어붙일 때 탄생하는 쿨한 멜로의 주인공은 하룻밤 사랑을 즐기는 바람둥이고, 징한 멜로의 주인공은 치정살인범이다.

징한 사랑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영원하고 닳지 않는거야
사랑에 몸을 던지고 싶을때 ‘신파‘ 가 가슴에 와 닿는다

징한 사랑, 너는 내 운명

징하게? 사랑 쿨하게? 영화로 보는 무지개색 사랑만들기-너는 내 운명
징하게? 사랑 쿨하게? 영화로 보는 무지개색 사랑만들기-너는 내 운명
<너는 내 운명>의 헤드카피는 ‘통속사랑극’이다. 통속이라는 말은 진부하고 유치하게 들린다. 박진표 감독이 이 ‘쑥스러운’ 헤드카피를 직접 붙인 이유는 “바라고 꿈꾸지만 진부하고 유치해서 선뜻 꺼내지 못하는 마음 속이 바로 통속의 뜻이 아닐까”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렇다. <너는 내 운명>에서 석중과 은하는 누구나 꿈꾸지만 진부해서 꺼내지 못하는 사랑, 유일무이하며 영원한 사랑을 한다. 석중은 “죽을 때까지, 아니 죽고 난 다음에도 계속 사랑할 것”을 다짐하고,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고 반문한다. 신파멜로의 사랑은 영원하고 닳지 않는다. 사랑에 관한 최고의 판타지다.

신파멜로 공식에서 두 사람의 사랑을 갈라 놓을 수 있는 건 죽음 뿐이고 이들의 사랑을 숭고하게 만드는 건 계급 차이나 사회적 편견 같은 관습과 주변의 핍박이다. <너는 내 운명>에서 은하는 에이즈에 걸린다. 부정적인 이미지로 가득찬 에이즈는 마을 사람들의 냉대와 거부라는 시련 위로 두 사람의 사랑을 몰아넣는다. 시련이 가혹할수록 ‘순정’은 더 순연해진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신파 멜로의 압도적 지지자가 여성이 되는 이유는 그 판타지의 정점에 순정에 목숨거는 남성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평론가 심영섭씨는 “부박한 여주인공에게 끝까지 헌신하는 남자의 존재는 <영자의 전성시대> 이후 한국형 신파 멜로의 공통점”이라면서 “60~70년대처럼 박해받는 여주인공에게 자신을 투사시키는 상황은 벗어났더라도 점점 더 독립성이 강조되면서 심정적으로 기댈 데를 찾기 힘든 요즘 젊은 여성들에게 신파멜로가 호소력을 가질 수 있는 이유”로 꼽았다.

쿨한 사랑, 반짝이는 한 순간

징하게? 사랑 쿨하게? 영화로 보는 무지개색 사랑만들기-사랑니
징하게? 사랑 쿨하게? 영화로 보는 무지개색 사랑만들기-사랑니
<사랑니>가 바라보는 사랑은 어느 순간 마음 속에 들어와 반짝거리지만 그 눈부심이 영원하지는 않은 것이다. ‘솔직하고 당당한, 그녀의 부러운 연애담’(헤드카피)은 소년 이석을 보는 순간 한눈에 반한 인영의 도발로 시작된다. 인영은 처음 본 이석과 자고 싶다는 속내를 함께 사는 오랜 이성친구에게 ‘쿨’하게 고백한다.

13살 연하남과의 연애는 ‘스캔들’이 될 수도 ‘신파 멜로’가 될 수도 있는 소재다. 주변의 수군거림과 비난이라는 장애물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쿨한 멜로 <사랑니>는 이 장애물을 유유히 빠져나간다. 요즘 여자 인영의 솔직함을 통해서다. “들키지 않을 자신 있어”라고 말하는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연이나 “너도 맛있어”라고 말하는 <연애의 목적>의 홍처럼 인영의 솔직함은 때로 관객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한다. 쿨한 멜로는 신파멜로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이 주인공의 감정과 함께 달려가기를 권하지 않는다. 등장인물로부터 거리두기는 이같은 멜로드라마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처음에 인영은 첫사랑과 다시 조우했다는 ‘운명적’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명백한 착각이었음이 금방 드러난다. 그러니까 <사랑니>는 운명적 사랑이 아니라 운명적이라고 생각-늘 연애의 시작이 그렇듯-했던 사랑에 대한 실수나 착각에 관한 이야기인 셈이다. 쿨한 멜로에서 사랑은 객관적이고 무거운 실체가 아니라 주관적이고 가벼운 감각이다. <사랑니>는 해피엔딩이나 파국같은 단순한 결말을 던져주지 않는다. 주인공들은 마치 부스스한 몸을 추스리고 직장에 나가는 것처럼 화면 밖으로 빠져 나간다. 몸부림치지 않고 사랑을 떠나보내는 이들에게도 가슴을 베는 고통은 남는다. 신파 커플의 고통은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지만 쿨한 커플의 고통은 쓸쓸할 뿐이다. 상처의 크기 탓이 아니다. 엘제이필름의 김소희 이사는 “신파의 상처가 해석불가능한 고통이라면 쿨한 멜로에서는 해석가능한 고통”이라고 말한다.

세상에는 하룻밤 사랑만 불태우는 바람둥이나 치정살인범이 많지 않듯 오로지 쿨하거나 격렬하기만 한 사랑도, 사람도 드물 것이다. 성격에 따라, 상대방에 따라, 또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저마다 만들어가는 사랑에서 쿨함과 징함이 섞이는 비율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존재한다. 이 가을, 당신은 열정과 냉정을 어떤 비율로 배합한 사랑 속으로, 영화 속으로 달려가고 싶은지….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영화사봄, 시네마서비스 제공.


“어떤 사랑을 원하세요” 올가을 멜로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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