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강남 1970〉으로 10년에 걸쳐 ‘거리 3부작’을 완성한 유하 감독을 1월14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김진수 기자
[한겨레21]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로 시작한 ‘거리 3부작’에 마침표를 찍는, <강남 1970>의 유하 감독
“시도 가끔 쓰세요?”
“그 얘기는 (근래 들어) 처음 듣네요. 안 쓴 지 정말 오래됐어요.”
그는 더 이상 ‘시인’ 유하가 아니었다. “영화 한 편 만드는 게 점점 어려워진” 시대를 살고 있는 영화감독 유하였다. “시는 떠오르지 않지만, 더디게 써지는 시나리오는 계속해서 쓰는”, 영화감독의 정서가 우세한 유하는 괜히 낯설었다. 시인 유하로 만난 적도 없으면서.
유하 감독이 2004년 <말죽거리 잔혹사>로 시작한 ‘거리 3부작’에 마침표를 찍는 <강남 1970>(1월21일 개봉)을 들고 왔다. 그 사이에는 조인성이 삼류 건달의 비루한 삶을 보여주는 <비열한 거리>(2006)가 있었다. “<말죽거리…>가 학교에서 어떻게 폭력을 만들어내는가에 초점을 맞췄다면, <비열한 거리>는 돈이 어떻게 폭력을 소비하는가를 말했다. 그리고 <강남 1970>은 권력이 폭력을 소비하는 이야기다. 세 작품은 모두 거리에서 배회하는 뒤틀린 청춘의 이야기다.”
“거리에서 배회하는 뒤틀린 청춘의 이야기”
‘거리 3부작’은 배우만 놓고 보면 당대의 청춘물이다. 2004년의 권상우는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터프가이’ 하이틴 스타였다. 2006년의 조인성도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에서 얼굴을 알린 뒤 <발리에서 생긴 일>을 통해 연기의 맛을 알아가던, 연기에 물이 오른 상태는 아닌 ‘하이틴 스타’에 가까웠다. <강남 1970>의 주연 이민호도 마찬가지다. <꽃보다 남자>를 통해 스타덤에 올라앉은 그는, 귀공자·재벌 2세 역할만 해온 귀한 이미지에 소녀팬을 몰고 다니는 스타다. “배우 캐스팅의 기준이 뭐예요?” “상업영화에서 팬덤 있는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거야 당연하죠. 다만 전혀 안 그럴 것 같은 친구에게서 반대 이미지를 구축했을 때 전복적인 쾌감이 있어요. 당시 정말 어렵게 캐스팅한 권상우씨는 터프가이였는데 모범생으로 바꿨죠. 조인성씨도 ‘비열한 삼류 건달’ 이미지는 당시에 전혀 없었다. 이민호씨도 귀공자·재벌 2세 이미지인데 고아 출신 넝마주이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죠.”
<강남 1970>은 김종대(이민호)·백용기(김래원)라는 가진 것 없는 두 청춘이 땅과 돈과 식구를 가져보겠다는 욕망을 안고 내달리는 이야기다. 종대와 용기는 서울 강남 땅 대부분이 배밭이던 1970년대, 주민등록도 없는 고아로 넝마를 주우며 무허가촌 판잣집에 살다가 그마저 철거돼 내몰린 ‘철거민’이다. 하다못해 술 먹고 때리는 부모마저 없는, 밑천이라곤 몸뚱아리 하나뿐인 인물들이다.
시인은 시를 잊었다지만, 그의 시는 영화 곳곳에서 떠오른다. <강남 1970>의 종대와 <말죽거리…>의 주인공 현수(권상우)의 눈빛은 비슷하다. 그들의 눈빛에서 유하의 시 ‘코코코’에 나오는 ‘무구한 아이’가 떠올랐다. ‘코코코’ 한 뒤 ‘입!’, ‘코코코’ 한 뒤 ‘눈!’을 짚는 놀이에서 “입도 눈도 아닌, 귀를 짚어 까르르 웃음거리가 된 한 꼬마아이”. “입도 눈도 아닌 것은 영원히 건널목을 건널 수 없나요? 코코코 게임을 즐기는 힘센 어른들에게 그 아이의 무구한 눈동자는 그렇게 묻고 있는 것 같았어”라고 시인은 쓴다. 건달이 된 뒤에도 종대의 눈빛이 그랬다.
‘거리 3부작’은 ‘강남 3부작’이기도 하다. 세 영화의 공간적 배경은 모두 ‘강남’이다.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현수는 “땅값이 오를 거라는 엄마의 선견지명”으로 ‘말죽거리’로 이사왔다. <비열한 거리>에서 건달 병두(조인성)가 배회하는 곳은 룸살롱이 즐비한 강남의 어느 거리다. 유하 감독에 따르면 “깡패들도 상권이 있는 곳에서 활약한다. 상권이 발달한 곳에는 지하철역마다 조폭파가 다르다. <비열한 거리>의 배경이 강남일 수밖에 없는 것은 그곳이 대한민국 최고의 상권이기 때문이다”. <강남 1970>은 두 영화의 프리퀄적 성격을 띤다. 현수 엄마의 ‘장차 땅값이 엄청나게 오를 거라는 선견지명’은 어떻게 현실이 되는가, 왜 강남에 돈이 몰리고 조폭들도 몰리는가에 대한 ‘팩션’이기도 하다.
왜 10년 동안 강남을 이야기하는 걸까
그 이유로 영화는 권력을 정조준한다. 강남이 지금의 강남이 된 건 권력의 땅투기 때문이라고. 애초 영화는 1970~77년 서울시에서 기획관리관, 도시계획국장 등을 지낸 손정목 서울시립대 명예교수가 쓴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의 ‘남서울 개발계획’에서 출발한다. 손정목에 따르면 당시 대통령 경호실장 박종규가 서울시 실무과장에게 과천·서초·강남·잠실 가운데 투자가치가 큰 지역을 꼽도록 지시했고, 서울시 실무과장이 땅을 사고 땅값이 오르면 되팔았다. 땅을 사모은 뒤 남서울 개발계획이 발표됐다. 권력의 땅투기는 대선자금 마련을 위해 실행됐다. ‘부동산 불패 신화’ 강남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유하가 과거를 다루는 방식은 영화 <국제시장>이 과거를 말하는 방식과는 다르다. “영화에서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은 그 시대를 그리워하기 위함은 아니다. 그 시대를 통해 현실을 이야기하고자 함이다. 지금 강남이 천민자본주의의 온상이 된 것은 나라에서 땅투기를 하고 거기에 시민들이 동참해 땅을 사고 굴리면서다. 결국 <강남 1970>은 돈을 위해서라면 모든 걸 다 하는 시절의 원형에 대한 이야기다. 돈의 가치가 어떤 가치보다 우월하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다른가. 달라진 게 없다. 그때보다 더 심화된 부분이 있다. 양극화는 더 심해졌고 권력의 전횡도 다르지 않다. 지금의 모습은 결국 그 시절이 남긴 그림자 아니겠나. <강남 1970>은 그 그림자에 관한 이야기다.” <국제시장>이 추억하며 영웅화한다면, <강남 1970>은 “지갑이 형님, 돈이 최고인 세상의 상징으로서의 강남을 통해” 오늘을 반성한다.
왜 유하는 10년 동안 강남을 이야기하는 걸까. “성장기의 핵체험이에요. 모든 창작자에게는 감수성이 굉장히 예민한 시기에 맞닥뜨리는 핵체험이 있기 마련인데, 저에게는 1974년 답십리에서 강남으로 이사와서 맞닥뜨린 강남의 풍경이 그에 해당합니다. 처음 이사갔을 때 친구들의 절반은 소작인의 자제였어요. 남의 땅에 농사를 짓고 가게를 내서 장사를 하고 한남동까지 가서 배추를 팔았죠. 나중에 개발 붐이 일면서 토박이들은 땅이 수용되거나 비워줘야 해서 성남 등 더 남쪽으로 많이 밀려났어요. 그때의 경험과 이미지, 친구들이 문학으로든 영화로든 계속 등장하는 것 같아요.” <말죽거리…>의 현수에게는 감독의 자아가 투영돼 있고, 종대는 현수의 친구다. “중학교 때 제 짝이었던 친구가 등록금이 없어서 고등학교에 가지 못했고, 그 주변에서 넝마주이를 했어요. 학교를 오갈 때 그 친구를 만나면 눈인사를 했어요. 눈인사만 했을 뿐, 이야기가 오가지는 않았어요. 건널 수 없는 계급의 강이라는 게 있는 건지. 그때의 잔영들, 어린 나이에 죄의식 같은 것도 느꼈고요. 그 넝마주이 친구의 이야기가 <강남 1970>이죠.”
“이 폭력이 저 폭력보다 더한가 질문하고 싶었다”
`거리 3부작은 폭력 3부작’이기도 하다. “제 영화에는 마초이즘에 대한 매혹과 경멸이 한 몸으로 있어요.” 폭력과 마초이즘이 찐하다. 특히 <강남 1970>의 진흙탕 액션신은 ‘리얼리스트’ 유하답지 않게 스타일에 힘을 준 장면이다. “그 장면은 사실 권력에 소비되는 ‘하수인’들의 대리전이에요. 논두렁 건달의 원초적 에너지를 표현하고 싶기도 했고 처절하되 불쌍한 페이소스가 있었으면 했어요.” 그가 ‘3부작’에서 폭력을 끝까지 밀고 간 이유는 “현실에서 괴물이 될 수밖에 없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현수는 수컷 되기를 강요하는 학교에서 괴물이 돼 옥상으로 올라갔고, 종대 역시 괴물이 돼 진흙탕 뻘밭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특히 종대와 용기가 괴물이 된 건 1970년대가 주입한 돈과 땅이라는 ‘가짜 욕망’ 때문이다. 무허가로 살면서도 즐거운 한때가 있을 수 있지만, 그 시대는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강남 1970>에서 유하는 처음으로 다중플롯 방식을 선택했다. “종대와 용기뿐 아니라 부동산 큰손이자 여당 소속의 전 국회의원인 서태곤까지 주인공이다.” 그 복잡한 인물들 각자의 서사와 시대의 서사를 버무리다보니 영화는 버거운 느낌이 든다. 인물 각자의 이야기가 울림을 주지 못한다. 이미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많이 뽑아낸 기억이어서일까. 다른 이야기지만 이미 본 것 같은 느낌도 있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이 <이동진의 부메랑 인터뷰 그 영화의 시간>에서 유하 창작력의 원천으로 꼽은 시인과 영화감독의 대결, 스토리와 스타일의 줄다리기, 장르의 익숙한 패턴과 일상의 생경한 리얼리티, 생생한 욕망과 그 뒤로 이어지는 덧없는 포말 등 ‘긴장의 대결’은 <강남 1970>에서는 사실 발휘되지 않는다. 그래서 남은 것은 거대한 기획 시대극 한 편일 뿐이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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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1970〉의 한 장면. 엔드크레딧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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