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영화·애니

영화 <할리우드 엔딩> 씹는맛 덜한 ‘할리우드 씹기’

등록 2005-09-28 19:04수정 2005-09-29 14:02

씹는맛 덜한 ‘할리우드 씹기’ 할리우드 엔딩
씹는맛 덜한 ‘할리우드 씹기’ 할리우드 엔딩
30일 개봉하는 우디 앨런의 <할리우드 엔딩>은 할리우드에서 감독으로 그가 점하고 있는 위상을 제대로 보여주는 영화다. 이 영화에서 퇴물 감독으로 취급받는 주인공 발 왁스만의 처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디 앨런은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지원을 받으면서도 간섭은 전혀 받지 않는 드문 감독 가운데 하나다. 그만큼 할리우드의 속내를 샅샅이 훑으면서도 마음껏 할리우드를 향한 공격과 조롱의 칼을 휘두를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은 사람은 없다시피하기 때문이다.

우디 앨런이 직접 연기했던 인물들이 늘 그래왔듯 이 영화에서 그가 연기하는 발 왁스만도 어느 정도 자기반영적 인물이다. 매사에 투덜거리고 속물적인 제작자와 언론, 평단을 모두 경멸하지만 결국 거대한 영화 제작 시스템 안에 포박돼있는 작고 초라한 인물이다. 잘 나갈 때는 아카데미상도 받았지만 지금은 화장실 용품 광고나 찍어야 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런 그에게 기적 같은 재기의 기회가 왔으니 무려 6천만달러 짜리 대작 프로젝트인 <잠들지 않는 도시>의 연출 제안을 받은 것이다. 문제는 영화의 제작자가 자신의 아내를 빼앗아간 장본인이라는 것이고 더 큰 문제는 모든 난관을 간신히 헤치고 촬영에 들어가기 직전 그의 눈이 과도한 스트레스로 멀어버렸다는 사실이다.

<할리우드 엔딩>의 모든 인물과 상황은 매우 전형적이다. 아내의 새 약혼자인 할리우드의 큰 손 할 예거는 돈만 밝히는 느끼한 인물이고, 발의 에이전트인 알은 ‘감독이 눈 먼다고 대세에 무슨 지장있겠냐’는 배포로 문제를 숨기고 돈줄 잡기에만 급급하다. 현장 프로듀서인 에드는 까맣게 선탠한 얼굴에 골프채를 들고 현장을 누비며 자기과시에만 바쁜 ‘예스맨’이고 현장 취재를 온 기자는 입에 발린 소리로 발의 비위를 맞추면서 뒤돌아서는 뒷통수를 치는 교활한 인물이다. 이들 사이를 눈 먼 발이 좀비처럼 허우적거리고 다니면서 웃음을 자아낸다. 웃음의 양으로야 전작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다. 그런데 1920년대 브로드웨이 무대를 배경으로 유사한 이야기를 꺼내는 <브로드웨이를 쏴라>에 비하면 이 작품은 지나치게 직설적이라 우디 앨런의 특장인 풍자나 아이러니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아이러니가 빚어진다. 이 영화는 할리우드를 독하게 씹고 있지만 우디 앨런의 어떤 영화보다도 할리우드적인 느낌을 주는 것이다. 인물은 전형적이고 상황은 억지스러우며 유머감각은 단순하다.

<할리우드 엔딩>에서 우디 앨런의 재능은 연출자로서보다는 배우로 빛이 난다. 눈이 멀었다는 사실을 숨기려고 조수까지 대동하고 다니지만 좌충우돌하며 의자에서 넘어지고 2층에서 떨어지는 등 그의 슬랩스틱 연기는 <돈을 갖고 튀어라> 등 초창기 작품에서 그가 보여줬던 코미디 연기자로서의 순발력과 기지가 녹슬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백두대간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