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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화면 속 그녀들, 청순하거나 욕쟁이거나

등록 2015-02-10 19:44수정 2015-02-10 21:12

듀나의 영화 불평
오늘의 연애
박진표의 <오늘의 연애>의 원제는 <세 남자의 그녀>였다. 내용도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던 모양인데, 그건 이 시나리오를 받아들고 영화 출연을 결정한 문채원의 인터뷰를 보면 알 수 있다. 출연 이유가 여성주도적인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라고 했으니 최종 각본이 완성되었을 때 배우가 얼마나 실망했을지 짐작이 간다. 각색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외부인으로서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완성된 영화가 ‘여성주도’와 별 상관이 없는 내용이라는 건 척 봐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칼럼을 쓰느라고 <오늘의 연애>를 다룬 황미요조의 <여성신문> 리뷰를 다시 읽고 있는데 구구절절 옳은 이야기뿐이라 덧붙일 말이 없다. 특히 “여자 캐릭터를 청순 헌신, 혹은 욕하고 술주정하고 화내는 인물로만 만드는 건 관찰력, 상상력의 빈곤이다”라는 일침은 제발 ‘여성 캐릭터’를 쓰는 남성작가들이 한 번쯤 염두에 두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읽다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이런 관찰력과 상상력의 문제에서 여성 작가들은 무죄인가?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일단 코미디가 있다. 최근 들어 <개그 콘서트>는 혐오적이거나 피상적인 여성 묘사로 욕을 먹고 있는데 이 프로그램은 PD가 여성이고 코미디의 성격상 각 코너의 개발에 코미디언 자신의 참여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단순히 남성 시점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이다. 자신을 희화화해야 한다는 임무 속에서 그 방향을 탐구하는 상상력이 부족한 것은 당사자 자신도 마찬가지이다. 그 결과 여성성이 결여된, 뚱뚱하고, 못생긴 여자들의 조롱이 무한반복된다.

드라마 이야기로 돌려보자. 말할 필요도 없지만 K-드라마의 막장 세계를 구축한 건 대부분 여성작가들이다. 영화와는 달리 텔레비전은 여성 작가의 목소리가 높은 편이지만 그렇다고 이 세계가 영화판보다 특별히 더 긍정적이지는 않다. 한국 영화와 드라마의 여성 묘사 경향성은 많이 다르지만 여성혐오는 오히려 드라마 속에서 더 심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묘사 상당수는 여성적 상상력의 결과물이다. 당연한 것이 성차별적 세계의 시스템과 세계관을 공유하고 유지하는 것은 남자들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종종 드라마에 등장하는 ‘진취적이고 긍정적인’ 여성 캐릭터도 한계가 있다. 이런 캐릭터들이 은근히 천편일류적이라는 생각이 안 드시는가? ‘털털하고, 귀엽고’…. 벌써 밑천이 떨어져버렸다. 한국여성 작가들이 상상하는 한국 여성 시청자들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고 호감가는 인물을 만드는 과정은 일반적인 한국 여성 소집단에서 신입이 받아들여지는 과정과 비슷하다. 재수없는 애라는 낙인이 찍히지 않으려면 거친 부분을 미리 다 떨어내야 한다. 당연히 상상력의 운용 가능성은 또 축소된다.

듀나 칼럼니스트
듀나 칼럼니스트
너무 비관적인 말만 한 건지도 모르겠다. 작년만 해도 <도희야>나 <카트>의 주인공들처럼 여성작가에 의한 좋은 여성 캐릭터들이 나왔다. 위에서 일반화시켜서 그렇지 드라마 세계도 단순하지는 않다. 큰 흐름을 부수는 작은 도전들은 늘 있기 마련이고 그건 생각만큼 위험한 일이 아니다. 대부분 작가나 제작자가 상상하는 가상의 시청자와 관객은 진짜 관객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심지어 그런 가상의 작가와 관객들도 자신이 무엇을 진짜로 재미있어하는지 모를 게 분명하다. 그 가능성을 탐구하고 이끄는 것은 여전히 상상력과 용기이다.

듀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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