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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흑백에 담은 핏빛 폴란드

등록 2015-02-17 20:19

영화 <이다>의 한 장면.
영화 <이다>의 한 장면.
영화 ‘이다’…소녀가 정체성 찾는 여정
자유분방한 이모와 함께 여행하며
유대인 부모의 죽음 비밀 알게 돼
폴란드의 한 수녀원에서 자란 고아 소녀 안나(아가타 트제부호프스카)는 곧 정식 수녀가 되는 서원식을 앞두고 있다. 수녀원장은 안나를 불러 유일한 피붙이인 이모 완다(아가타 쿨레샤)의 존재를 알려주며 만나고 오라고 명한다. 난생처음 만난 이모로부터 안나는 뜻밖의 얘기를 듣는다. 안나가 실은 ‘이다’라는 본명의 유대인이라는 것. 부모의 죽음에 대해 알고 싶어진 안나는 “시신이 묻힌 곳이라도 찾고 싶다”고 부탁하고, 이모 완다는 함께 길을 나선다.

두 여인은 여러모로 상반된다. 아주 어릴 때부터 수녀원에서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아온 안나는 순수와 절제 그 자체다. 스탈린 공포정치 시대인 1950년대 초 ‘피의 완다’로 통했을 정도로 많은 이들에게 사형을 선고한 판사였던 완다는 이제 술과 담배, 섹스를 즐기며 자유분방한 삶을 산다. 둘은 여행을 하며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결국 안나 부모의 죽음의 비밀을 알게 된다.

폴란드인 감독 파베우 파블리코프스키(파벨 포리코브스키)는 둘의 여정을 4:3 비율의 흑백 화면에 담아냈다. 일반적인 화면보다 좌우 폭은 좁고 상하 폭은 넓은 셈인데, 특히 여백을 많이 두는 화면 구성으로 일관한다. 화면의 아랫부분에 사람들의 얼굴이 있고, 그 위로는 광활한 허공이 있는 식이다. 카메라 또한 특별한 의도를 담은 마지막 장면을 제외하고는 이동이나 흔들림 없이 고정샷으로 일관한다. 안정적인 구도의 담백하고 아름다운 수묵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여백만큼이나 생략도 많다. 대사가 많지 않고, 장면 사이사이 행간으로 이야기들이 숨어든다. 이 때문에 이야기 전개나 인물들의 심리가 확 다가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름다운 여백과 숨은 행간을 더듬다 보면, 아프고 슬픈 이야기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비밀을 알게 된 뒤 완다는 왜 갑자기 극단적 선택을 하며, 이후 안나는 왜 이전과 다른 행동을 하는지, 결국 안나는 최종적으로 어떤 선택을 하는지 등에 대해 마음 깊이 곱씹게 된다.

영화는 폴란드의 아프고 슬픈 근현대사와 맞물린다. 주한 폴란드 대사의 부인 조피아 마이카는 지난 4일 <이다> 시사회에 참석해 “독일 나치와 러시아에 의해 폴란드 인구의 18~22%가 학살됐다. 영화를 본 뒤 어떤 판단을 내리든, 그 전에 반드시 폴란드의 역사를 알아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영화는 궁극적으로 인간과 신, 종교의 영역에까지 가닿는다. 폴란드인이 아니어도 영화의 보편적 정서와 감동을 충분히 전해받을 수 있다.

<이다>는 유럽, 미국 등 세계 영화제에서 57개 영화상을 탔다. 지난 8일(현지시각)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으며, 오는 22일(현지시각) 열리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 외국어영화상과 촬영상 후보로 올라 있다. 예술영화임에도 프랑스(300만달러), 이탈리아(60만달러), 미국(370만달러) 등에서 상당한 흥행 수익을 올렸다. 18일 개봉.

서정민 기자, 사진 시네마뉴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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