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나의 영화 불평
버드맨
버드맨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의 <버드맨>은 슈퍼히어로 영화 제목을 달고 있으면서 정작 슈퍼히어로 영화에 대해서는 공격적이기 짝이 없다. 마이클 키턴이 연기한 주인공은 왕년의 ‘버드맨’ 캐릭터로 인기를 얻었지만 프랜차이즈를 떠난 다음 몰락해버렸고, 재기를 위해 전재산을 투자해 레이먼드 카버 소설 원작의 연극을 무대에 올리는 할리우드 배우로 나온다. 그는 실제로 팀 버튼이 주연한 두 편의 <배트맨> 영화에 나왔고 그 이후의 경력이 기대만큼은 아니었기 때문에 배우와 그가 연기하는 캐릭터는 겹치는 구석이 많다.
영화에서 버드맨 캐릭터는 그를 계속 따라다니는 메피스토펠레스와 같은 악마다. 브로드웨이 공연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해질수록 버드맨의 환영은 그를 따라다니면서 유혹한다. 그에게 슈퍼히어로 영화란 가장 하찮은 부분만을 건드리면서도 명성과 부를 거머쥘 수 있는 지름길이고, 브로드웨이 연극은 배우와 예술가로서 그의 정체성을 입증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스트레스가 심해질수록 그는 수많은 실명 배우들을 들먹이며 이들을 모두 쓸어간 슈퍼히어로 영화를 저주한다. 그러고 보니 그와 공연하는 에드워드 노턴 역시 몇 년 전, 한번뿐이지만 헐크를 연기한 적이 있다. 둘 다 할리우드 슈퍼히어로 영화의 졸업생인 셈이다.
실제 슈퍼히어로 영화는 배우들을 망쳐놓는가?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지금 슈퍼히어로 영화 전선에 선 수많은 배우들이 그 역할로 재미를 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전처럼 고정된 이미지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일은 없다. 슈퍼히어로 과잉이라고 할 수 있는 지금의 상황은 오히려 배우들에게 유리하다. 마이클 키턴이 배트맨을 연기하던 옛날에는 배우가 하나의 이미지로 고정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가 슈퍼히어로를 연기하고 있으니 이미지 고정의 의미가 없다. 진짜 좋은 배우라면 과장된 만화 속 캐릭터와 다른 캐릭터 사이를 무리 없이 오갈 수 있어야 하고 그러는 동안 오히려 진가가 드러날 것이다. <버드맨>에게 표출되는 혐오도 일반적이라기보다는 마이클 키턴 캐릭터에 특화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개인적인 의견을 말한다면 지금의 슈퍼히어로 유행은 지겹다. ‘진짜 배우가 나오는 진지한 영화’에 대한 판타지는 없다. 반대로 이런 영화들은 할리우드 장르 영화들의 판을 따분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지겹다. 처음부터 이죽거리는 농담들을 깔고 시작한 이 장르는 이제 농담에 대한 농담에 대한 농담 같다. 엄청난 특수효과로 그럴싸한 세계를 만들긴 하지만 슈퍼히어로 설정에 눌려 상상력은 비좁아진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그럭저럭 재미있게 보긴 했지만 나로서는 이 스페이스 오페라의 무대가 되는 온갖 행성들이 모두 지구 뒷동네 어디쯤으로 보이는 것이 어이없고, 모두 할리우드 배우들처럼 수렴진화한 외계인들에게 진력이 났다. 과연 우리가 무언가 다른 것을 볼 가능성은 있는 것인가?
배우들이야 적응할 것이다. 어차피 그들에겐 다른 연기 근육을 테스트할 기회가 얼마든지 있다. 곧장 말하면 슈퍼히어로 영화 자체가 그런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이런 일원화된 환경이 장르에 끼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크다. 상상력의 제한, 장르를 다루는 방식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인한 근육의 퇴화는 배우들의 연기근육처럼 쉽게 교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듀나 칼럼니스트
듀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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