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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임권택과 안성기, 욕망 그 본능적 고통을 말하다

등록 2015-03-22 20:04수정 2015-03-23 10:04

영화 ‘화장’으로 12년만의 재회
영화 <화장>을 연출한 임권택 감독(오른쪽)과 주연 배우 안성기가 19일 오후 서울의 한 한옥 찻집에서 카메라 앞에 섰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영화 <화장>을 연출한 임권택 감독(오른쪽)과 주연 배우 안성기가 19일 오후 서울의 한 한옥 찻집에서 카메라 앞에 섰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부사장 승진까지 바라보는 잘나가는 회사 중역, 아내가 뇌종양을 앓는다. 헌신적으로 아내를 구완하지만, 그는 젊고 화사한 부하 여직원에게 마음이 끌린다. 끊임없이 흔들린다.

영화 <화장>(제작 명필름)은 이렇게 간단한 이야기가 전부이다. 하지만 임권택(80) 감독의 102번째 연출작인데다, 배우 안성기(63)가 주연을 맡아 제작 당시부터 영화계 안팎의 시선을 끌었다. 원작은 2004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김훈의 동명 단편 소설이다. 팔순에 접어든 거장은 죽음과 욕망을 얘기한다. 죽은 아내를 태우는 화장, 여인이 얼굴을 꾸미는 화장, 제목에는 이런 역설이 담겼다. 영화 <화장>이 다음달 9일 관객을 찾아간다. 19일, 서울 사간동의 한옥 찻집에서 임 감독과 안성기를 만났다.

임권택 감독 102번째 연출작
아역시절 빼면 7번째 공동작업
죽어가는 아내 병구완 와중에
젊은 여직원에 끌리는 중년 그려

■ 죽음, 추함과 아름다움 사이

인터뷰는 곧바로 영화의 중반부에 등장한 욕실 장면으로 향했다.

50대 초반의 아내(김호정)는 뇌종양이 악화하면서, 생명의 불꽃이 사그라지고 있다. 변을 놓칠 만큼 중증이다. 엄마를 그토록 사랑하는 외동딸마저도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남편 오 상무(안성기)는 아무런 불평 없이 아내를 욕실로 데려가 똥이 묻은 옷을 벗기고 씻긴다. 아내는 이런 모습을 남편에게 보여주기 싫다. 하지만 몸이 말을 안 듣는다. 아내는 육체적 고통에 몸부림치며 마음으로 더 크게 울부짖는다.

 올해 여든인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연출작 <화장>은 뇌종양으로 죽어가는 아내를 극진히 보살피면서도 젊고 화사한 여인에게 끌리는 중년 남성을 통해 삶과 죽음, 그 속에서 끊임없이 고개드는 욕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올해 여든인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연출작 <화장>은 뇌종양으로 죽어가는 아내를 극진히 보살피면서도 젊고 화사한 여인에게 끌리는 중년 남성을 통해 삶과 죽음, 그 속에서 끊임없이 고개드는 욕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임 감독도 이 장면을 영화의 등뼈로 삼았다. “남편과 아내의 마음을 한 장면에서 강렬하게 드러내지 못하면 다른 데 자리가 없다. 이 장면이 영화의 앞과 뒤를 연결하는데, 잘못되면 영화 전체가 통째로 무너질 수도 있었다.”

병으로 무너져가는 육신. 배우 김호정은 죽지 않을 만큼 굶었고, 8㎏을 감량했다. 죽음은 원래 그렇게 추한 것이니까. 20대 관객이라면 일부는 고개를 돌려버릴 수도 있겠지만, 감독은 이 장면을 “아름답게 그려졌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이미 매력적인 젊은 여성을 마음에 두고 있기에, 남편의 헌신적인 병구완은 “성실함”이 더욱 강조된다. 아내는 육신과 함께 자존감마저 무너져내렸다. 이 둘의 마음과 상황이 한 장면에 올곧게 담겼다고 임 감독은 자평했다.

애초 이 장면은 반라만 드러나도록 촬영했다. 임 감독은 촬영 현장에서 결단을 내렸다. 김호정에게 전라를 다시 촬영하자고 부탁했다. 김호정은 몇몇 기자들에게 “감량 막바지에 그렇게 살이 빠지지 않더니, 이날 하루 만에 2㎏이 빠졌다”고 밝혔다. 배우, 특히 여배우로서 결코 쉽지 않은 장면이었다는 얘기다.

■ 삶, 욕망의 다른 이름

죽어가는 아내를 헌신적으로 돌보는 오 상무는 언젠가부터 부하 여직원 추은주 대리(김규리)를 마음에 담아 두고 있다. 거부하고 지나치려 해도, 마음은 계속 끌려간다. 추 대리도 그 마음을 어렴풋이 알고 있다. 병상의 아내도 짐작하는 듯하다. 가질 수 없는 욕망은 고통만 가져온다. 그대 중생이여, 어찌할 것인가?

안성기는 “며칠 전에 영화 포스터를 버스 옆면 광고에서 봤다. 내가 봐도 그 모습이 낯설더라. 나는 이미 그 감정 상태에서 빠져나왔으니 그런 것 같다”고 했다. 1년 전 이미 촬영을 마쳤으니, 연기에 몰입할 당시와 달리 객관화됐다는 얘기다.

 올해 여든인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연출작 <화장>은 뇌종양으로 죽어가는 아내를 극진히 보살피면서도 젊고 화사한 여인에게 끌리는 중년 남성을 통해 삶과 죽음, 그 속에서 끊임없이 고개드는 욕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올해 여든인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연출작 <화장>은 뇌종양으로 죽어가는 아내를 극진히 보살피면서도 젊고 화사한 여인에게 끌리는 중년 남성을 통해 삶과 죽음, 그 속에서 끊임없이 고개드는 욕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오 상무가 회식에서 매력적으로 춤을 추는 추 대리를 ‘슬쩍’ 엿보는 장면은, 안성기의 내면 연기가 빛을 뿜는다. 안성기는 “젊은 여성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망, 그리고 관객과 카메라한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속 깊은 감정을 드러내야 했다. 적당한 속도로 다가오는 카메라와 감정선이 잘 맞아떨어졌다”고 했다. 욕망을 드러내는 역할을 거의 맡지 않았기에, 더 부담스러웠던 장면이라고 했다. 오 상무가 욕망이라는 본능적 고통에 견디지 못하고 밤거리를 허우적허우적 걷는 대목에선 빛나는 네온사인 아래 고독과 허망함, 슬픔을 포착해냈다. 관객 가운데 어떤 이는 그렇게 밤거리를 걸었던 기억을 떠올릴 것이다.

추 대리를 불편하게 느낄 수도 있다. 오직 여성적 매력만 강조되고, 피사체로만 존재한다는 점에서 ‘예쁜 인형’이라 할까. 배우 김규리는 기자들과 만나 “추 대리는 결국 영화 끝에 사라져야 한다”면서, 한껏 매력을 발산해야 함에도 결국 물러나야 하는 인물이었다고 말했다.

영화의 마무리 방식에 대해 불만스러울 수도 있겠다. 아내가 사랑하는 개 ‘보리’의 운명 때문이다. 안성기는 영화와 조금 다른 결말을 감독에게 제안했지만, 임 감독은 애초 자기 구상대로 그려냈다.

 올해 여든인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연출작 <화장>은 뇌종양으로 죽어가는 아내를 극진히 보살피면서도 젊고 화사한 여인에게 끌리는 중년 남성을 통해 삶과 죽음, 그 속에서 끊임없이 고개드는 욕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올해 여든인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연출작 <화장>은 뇌종양으로 죽어가는 아내를 극진히 보살피면서도 젊고 화사한 여인에게 끌리는 중년 남성을 통해 삶과 죽음, 그 속에서 끊임없이 고개드는 욕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배우 안성기에게 임 감독은…
“현장 지키는 그 자체로 귀감”
임 감독에게 102개의 영화란…
“모두가 아쉬웠던 작품들뿐”

■ 103번째 영화

임 감독과 안성기는 <취화선>(2002) 이후 12년 만에 영화로 재회했다. 아역배우 시절을 빼면 일곱번째 공동작업이다.

임 감독은 “안성기 배우는 영화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연기자를 통틀어 가장 모범적인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안성기는 “감독님은 우리 영화를 해외에 본격적으로 알리고 위상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현장을 꿋꿋하게 지키는 것 자체가 후배들에게 귀감이자 희망이 되고 있다”고 했다.

평생 한길을 걸어온 거장은 102편의 영화 가운데 무엇을 최고로 꼽을까. 임 감독은 “모두가 아쉬웠던 작품들뿐”이라고 했다. 그래도 한 작품만 꼽아달라 했다. 그는 “영화란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작업이다. 결과가 어떠하던 그분들 모두의 필사적 노력이 있었다”고 답했다.

<화장>을 팔순의 거장의 마지막 작품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임 감독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최근에 어디서 시(詩) 한 편을 봤다. 이를 15~20분짜리 단편 영화로 만들어 보려 한다. 월급쟁이가 사소한 일로 식당 주인과 다툼을 벌이는 건데, 너무 빨리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뭔가 소중한 것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려 한다.” 그의 머릿속에선 이미 103번째 작품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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