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나의 영화 불평
신데렐라
신데렐라
최근 들어 디즈니에서는 이미 만들어졌고 작품성도 인정 받고 있는 자사 애니메이션 고전들을 하나씩 실사 영화로 리메이크하고 있다. <잠자는 숲 속의 미녀>를 각색한 <말리피센트>와 <신데렐라>는 이미 만들어졌다. <미녀와 야수>는 캐스팅이 완료되었고 소문에 따르면 <뮬란> 역시 실사 영화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개인적 의견을 말한다면 굳이 이럴 필요까지 있느냐는 것인데, 내 의견과 상관없이, 사람들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을 좋아한다. 리메이크나 리부팅이 요새 유행은 아니다. <벤 허>나 <사운드 오브 뮤직>과 같은 할리우드의 고전 역시 리메이크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리메이크가 계획되었다는 사실 자체보다 결과물이 더 중요하다. 특히 <말리피센트>와 <신데렐라>는 극과 극의 작품이라 재미있다. <말리피센트>는 <잠자는 숲 속의 미녀>의 이야기를 거꾸로 해석해서 악역인 마녀 말리피센트를 주인공으로, 공주의 아버지인 왕을 악역으로 만든다. 하지만 얼마 전 개봉된 <신데렐라>는 고전의 스토리를 충실하게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원작을 따르는 게 큰 문제는 아니다. <보봐리 부인>과 <테레즈 라캥>, <올리버 트위스트>와 같은 작품을 각색하면서 원작에 충실했다고 욕을 먹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신데렐라>는 사정이 다르다. 현대 관객들은 소스가 되는 이 이야기가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보고, 당연히 정치적으로 교정된 재해석본을 내야 한다고 믿는다.
<신데렐라>의 재해석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우리가 아는 모든 신데렐라 이야기는 사실 재해석본이다. 페로의 동화는 원작의 잔인한 부분을 잘라냈다. 이성의 시대에 만들어진 로시니의 오페라는 원작의 초자연적인 요소들을 모두 도려냈다. 영화의 시대에 와서도 수많은 버전들이 있다. 주인공이 흑인이 되기도 하고 남자가 되기도 하고 동성애가 들어가기도 하고…. 직접적인 <신데렐라> 각색물이 아니더라도 넓은 의미의 신데렐라 이야기까지 포함하면 더 넓어진다. 25살이 된 줄리아 로버츠의 히트작 <귀여운 여인> 역시 어떻게 보면 신데렐라 영화이다.
페미니스트 버전으로 재해석된 <신데렐라>도 기대할만 하다. 하긴 지금까지 나온 신데렐라들은 오리지널보다 더 페미니스트적인 인물들이었다. 만든 사람들이 페미니스트여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야기가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신데렐라도 훨씬 활달한 인물이다. 자기 주장이 있고 적극적이다. 단지 신데렐라 이야기의 기본 구성을 깨트리는 정도는 아닐 뿐이다. 하지만 그 선을 넘으면 더 이상 신데렐라가 아니다. 캐네스 브래너의 선택에 모두가 동의할 수는 없겠지만 이치에 맞는다.
과거의 고전은 짐이다. 우리는 그것들이 알면서도 버리지 않는다. 그 역시 우리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이번 신데렐라도 그 전형적인 타협의 과정이다. 물론 여전히 재해석의 길은 있다. 하지만 원작을 흔들었던 <말리피센트>는 성공작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아마 가장 올바른 길은 어쩔 수 없이 계급주의와 성차별의 세계일 수밖에 없는 동화세계를 재해석으로 고칠 시도를 할 시간에 새로운 이야기와 세계를 만드는 것이다. 여전히 과거의 짐을 버릴 수는 없지만 무게중심을 옮길 수는 있다.
듀나 칼럼니스트
듀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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