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송 원>은 음악은 사랑과 위로의 언어임을 확인한다. ‘송 원’(song one)은 싱어송라이터가 처음 쓴 자작곡을 뜻한다. 박수엔터테인먼트 제공
또 하나의 음악영화 ‘송원’
노래하는 해서웨이도 없고
사회에 대한 풍자도 없지만
여러모로 고단한 30대 감성
정직하고 담담하게 담아내
노래하는 해서웨이도 없고
사회에 대한 풍자도 없지만
여러모로 고단한 30대 감성
정직하고 담담하게 담아내
벌써 만 2년이 넘게 흘렀다. 2012년 12월, 사람들은 극장으로 향했다. 많은 상처 받은 사람들에게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감독 톰 후퍼)이 큰 위로가 됐다. 공장에서 쫓겨난 뒤 어린 딸의 양육비 때문에 머리카락을 자르고 생니를 뽑고, 몸까지 팔며 고통 속에 죽어가는 미혼모 ‘판틴’역으로 깊은 감동을 줬던 앤 해서웨이가 올 봄 다시 음악영화로 우리 곁을 찾는다. 지난해 <인터스텔라> 등 많은 작품에서 배우의 면모를 확인했지만, <레미제라블>에서 감동적인 노래 실력을 보여준 그가 음악영화로 찾아오니 더욱 반갑다.
그런데 <송 원>에서 앤 해서웨이는 본격적으로 노래를 부르진 않는다. 흥얼거리거나 유행가를 한 번 부르는 게 전부다. 그의 노래 실력이 다시 드러나길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는 음악이 위로와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음을 유감 없이 드러낸다. 앤 해서웨이의 섬세한 감성 연기가 이를 든든히 뒷받침한다.
프래니(앤 해서웨이)는 모로코에서 인류학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던 중, 남동생이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소식을 듣고 뉴욕으로 돌아온다. 남동생은 대학을 중퇴하고 음악에 빠져 살았고, 프래니는 그런 동생과 크게 다툰 뒤 소식을 끊고 살았다. 죄책감에 시달리던 프래니는 우연히 동생의 일기장을 엿보게 되고, 동생이 가장 존경하는 가수 제임스(자니 플린)를 찾아간다. 프래니는 제임스와 함께 뉴욕의 구석구석, 동생의 자취를 따라간다.
제임스도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사랑했던 여인이 떠난 뒤 5년째 신곡을 내놓지 못한 채 척박한 삶을 살고 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상처를 알게 되고, 갖가지 색깔의 음악은 둘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준다.
영화의 음악은 미국 인디음악계의 기둥으로 평가받는 제니 루이스와 조나단 라이스가 맡았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 음악은 그저 듣기 좋은 게 아니라 제임스와 프래니의 감정과 이야기를 대변하고 수식한다. 이야기의 주요한 흐름에서 한 발 비켜있는 자니 플린은 이 노래로 이야기하고 연기하는 셈이다. 실제 자니 플린은 뮤지션 출신의 연극배우로, 100% 라이브로 녹음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찾는 클럽들은 뉴욕의 음악 애호가들이 아끼는 곳들로 도시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서울의 깊이는 어느 만큼일까 물을 수도 있겠다.
<레미제라블>의 판틴이 죽음과 혁명의 냄새가 진동하는 19세기 프랑스에서 수레바퀴 아래서 숨을 헐떡이는 연약한 여인이었다면, <송 원>의 프래니는 마음이 시리고 위로가 필요한 우리네 30대의 모습 그대로다.
영화는 지난해 개봉한 <비긴 어게인>(감독 존 카니)과도 색깔이 다르다. 음악이 영화의 ‘절반’을 차지하고 같이 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삼았지만, 이를테면 20대와 30대의 차이라고나 할까. <비긴 어게인>이 밝은 봄날의 화창한 낮을 주된 배경으로 삼았지만, <송 원>에선 주로 뉴욕의 밤거리를 포착한다. <비긴 어게인>이 미국 음반산업에 대한 풍자를 포함해 여러 영화적 장치를 배치했지만, <송 원>은 여러모로 삶이 고단한 30대의 감성을 정직하고 담담하게 포착했다. 그래서인지, 톡톡 튀는 드라마는 없고 음악의 대중성도 조금 떨어진다. 왁자지껄한 주말 복합상영관에서보다는 평일 오후의 한적함과 잘 어울린다. 4월2일 개봉.
안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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