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악’ 경계 지운 존 말코비치의 카리스마-리플리스 게임
영화 ‘리플리스 게임’
냉혈한 리플리를 주인공으로 한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범죄소설 ‘리플리’ 시리즈는 영화를 통해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부잣집 친구를 죽이고 친구 행세를 하는 알랭 들롱 주연의 <태양은 가득히>를 비롯해 빔 벤더스, 안소니 밍겔라 감독 등이 제각기 다른 스타일의 리플리를 스크린에 빚어 올렸다. 이탈리아 여성 감독인 릴리아나 카바니가 2004년 연출한 <리플리스 게임>(6일 개봉)은 리플리 시리즈의 후기작으로 선과 악의 통념에 대한 반기라는 점에서 감독이 영화 속에서 지속적으로 펼쳐왔던 관심사와 원작의 주제가 맞아 떨어진다. 여기에 삼위일체를 이루는 것이 귀족처럼 우아한 말투로 섬뜩한 범죄자 역할을 능란하게 해내는 좀 말코비치의 탁월한 연기다. 알랭 들롱, 브루노 간츠, 맷 데이먼 등 역대 리플리들이 하나같이 독특한 매력을 보여줬지만 <리플리스 게임>의 존 말코비치처럼 배우의 카리스마에 많이 기댄 리플리도 없을 것 같다. 잔인한 살인을 하면서도 조금의 동요없이 지적이고 품위있는 태도를 잃지 않는 그의 태도는 이 영화의 큰 주제인 선과 악의 경계를 순식간에 지워 버린다. 이탈리아에서 챔발로 연주자인 아내와 함께 풍요롭게 살아가는 리플리는 어느날 동네 파티에 초대받아 갔다가 집주인 조나단(더그레이 스콧)이 자신을 모욕하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전에 함께 범죄를 저지른 동료로부터 청부살인 요청을 받은 리플리는 조나단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가 청부살인을 대신 할 수밖에 없도록 함정을 판다. 그러나 살인자가 된 조나단이 범죄 조직에 말려들어 또다른 임무를 뒤집어쓰게 되자 리플리는 묘한 연민을 느끼며 조나단을 돕고 둘 사이에는 끈끈한 연대감이 형성된다. 영국인 특유의 오만함이 있지만 유약한 데다 급성백혈병까지 걸린 남자 조나단은 점점 범죄의 세계 안으로 들어온다. 리플리는 조나단을 망치기 위해 그를 유혹하지만 그가 순진한 처녀처럼 자신의 세계 안으로 들어오자 그를 보호하기 위해 애쓴다. 결국 조나단이 리플리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는 둘의 관계는 소설 ‘리플리’ 시리즈를 끈질기게 따라다니던 동성애 논란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모든 상황이 종료된 마지막까지 ‘쿨’함을 잃지 않지만 머릿 속에서 계속 조나단을 떠올리는 리플리의 모습도 둘의 관계에 대한 미묘한 복선으로 남는다. 엔리오 모리코네가 음악을 맡아 영화에 클래식한 분위기를 더한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스폰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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