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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등록 2015-05-19 19:03

영화 <산다>의 한 장면.
영화 <산다>의 한 장면.
박정범 감독, 각본·주연 영화 ‘산다’
목 졸려오는 상황에서 살길 찾기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관용구가 가끔 우리 삶에 찾아올 때가 있다. 주어진 상황을 거슬러 삶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얘기일 터이다.

영화 <산다>는 부제로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표나게 내세웠다. <무산일기>의 박정범 감독이 직접 대본을 쓰고, 주연으로 연기하고, 연출한 작품이다. 2시간45분의 긴 상영시간이 끝나면, 박 감독이 과장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스크린 속의 삶도 힘겹고, 이를 지켜보는 관객도 함께 힘겹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다”라는 말이 감히 떠오른다.

강원도 진부 쪽에서 건설현장 일용직 노동자로 살아가는 ‘정철’(박정범)은 무엇 하나 제대로 풀리는 게 없다. 지난해 여름 폭우로 인한 산사태로 부모를 잃었고, 집도 절반 정도 무너졌다. 겨울이 닥치는데 공사장 십장은 노동자들의 임금을 챙겨서 도망쳐버렸다. 여기에 아빠가 누구인지 모르는 아이를 낳아 키우는 누나 ‘수연’(이승연)은 정신이 오락가락하면서 수시로 가출한다. 유일한 안식처인 여자친구는 다른 곳을 쳐다본다. 정철은 사방이 꽉 막힌 상황에서도 살기 위해 발버둥친다.

영화는 자본주의 현실에 대한 뛰어난 묘사이기도 하다. 정철은 공사장 일이 끊기면서 된장공장 일에 매달린다. 사장의 맘에 들기 위해 벌목장에서 나무를 베어 오고, 사장의 집안잔치를 위해 닭을 잡는다. 일단 자신이라도 살이남아야 하기에, 된장공장의 다른 노동자들을 쫓아내는 데 앞장선다. 이런 과정을 거쳐 된장공장에 자리를 잡고서 “이 정도면 이번 겨울은 날 수 있을 거야”라고 아주 잠깐 행복 비슷한 것을 느끼지만, 이내 된장공장 사장은 그를 배신한다.

영화는 또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의 현실을 포착했다. 정철이 언 땅에서 돌덩이를 캐내려 안간힘을 쓰거나, 벌목장에서 홀로 도끼질을 하는 모습은 끔찍한 노동의 고통을 관객들에게 일깨운다. 힘겨운 노동을 체험해 본 관객이라면, 정철이 나무와 돌과 씨름하면서 몰아쉬는 숨소리가 더 크게 들릴 것이다.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정철은 살아갈 이유가 있다. 지켜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자신을 괴롭히는 누나지만, 누나가 남한테서 욕먹는 건 참지 못한다. 어린 조카도 지켜야 한다. 그래서 정철은 틈만 나면 무너진 집을 고친다. 그것이 상처를 치유하고 행복을 되찾는 유일한 길이라도 되는 양….

영화는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 ‘삼인삼색’ 프로젝트에 힘입어 제작됐다. 20곳 넘는 국제영화제에 초청됐고 여러 영화상을 받았다. 165분의 긴 상영시간에 대해 관객과 ‘타협’할 순 없었을까. 박 감독은 기자간담회에서 “원래 시나리오는 5시간 분량 짜리 영화였다. 뒷 부분은 촬영을 했지만 상당 부분 보여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나름 ‘행복한 결말’에 대해 “인간을 믿기에, 삶에서 그래도 기적은 가능하다는 생각을 담았다”고 했다. 21일 개봉.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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