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차일드44>의 한 장면. 왼쪽은 주인공 레오 역을 맡은 톰 하디. 사진 누리픽처스 제공
영화 ‘차일드 44’ 옛 소련이 배경
스릴러·이데올로기 기막힌 접목
스릴러·이데올로기 기막힌 접목
영화 <차일드 44>(감독 다니엘 에스피노사)는 1950년대 소련을 무대로 삼았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쟁영웅인 ‘레오’(톰 하디·사진 왼쪽)는 비밀경찰 장교로서 체제 수호의 임무를 다한다. 영국 스파이로 지목된 수의사를 체포하는 등 능수능란한 일처리로 출세가도를 달린다. 그런데 자신이 체포한 용의자가 사랑하는 아내 ‘라이사’(노미 라파스)를 스파이로 지목한 뒤 총살당한다. 이제 아내를 버리고 혼자 살거나 아내와 함께 추락해야 하는 갈림길에 선다. 레오는 고뇌 끝에 아내를 고발하지 않고 숙청당한다.
영화가 이 정도에서 멈춘다면 한 편의 ‘반(反)스탈린 영화’ 또는 반공영화에 그쳤을 것이다. 1930년대 절정에 이르렀던 스탈린의 대숙청은 앞으로도 얘기를 더 해야 할 숙제다. 그런데 영화는 몇 걸음 더 나아가고, 여기에 진짜 ‘재미’가 있다.
레오가 잘나가던 시절, 철길 옆에서 어린아이가 주검으로 발견된다. 당시는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시절이라 “완벽한 국가에서 살인 범죄란 없다”고 돼 있다. 살인사건을 인정하는 건 국가에 대한 도전이 되는 셈이다. 레오는 단순한 기차사고로 사건을 덮었지만, 모스크바에서 600마일 떨어진 시골로 쫓겨난 뒤에도 그곳에서 비슷한 상흔을 가진 다른 어린아이의 주검을 또 발견한다. 연쇄살인사건임을 직감한 그는 국가에 도전할 것인가, 질서의 변화를 꾀할 것인가 갈림길에 선다. 아내는 말한다. “진실을 좇으면 어떻게 되는지 당신도 알잖아요?”
영화는 이처럼 여러 겹의 이야기를 잘 직조해냈다. 어린이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는 스릴러물의 형식을 갖췄고, 국가와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바탕에 깔았으며, 그 속에서 레오는 인간적으로 성장해 간다. 특히 레오와 아내가 위기를 극복하고 사랑을 키워 가는 모습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 영화의 한 축인 연쇄살인은 1978년에서 1990년까지 52명의 여자와 어린이를 살해해 러시아를 충격에 빠뜨린 ‘살인마’ 안드레이 치카틸로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 다만, 연쇄살인범에 대한 추적은 너무 쉽게 성공하는 듯해서, 스릴러물로만 보는 관객에게는 약간의 실망감을 줄 수도 있겠다. 영화 막판의 급한 호흡도 역시 단점이다.
배우들의 연기는 일품이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맥스’를 연기한 톰 하디는 이 영화에서 잔혹한 비밀경찰을 훌륭히 연기해냈다. 굵은 목소리와 러시아식 영어 발음, 무심한 듯한 표정은 선 굵은 연기의 묘미를 느끼게 한다. <프로메테우스>(2012)와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2009) 등에서 열연한 노미 라파스는 영화 속 레오의 아내 라이사로 ‘강인한 러시아 여인’의 전형을 보여준다. 게리 올드먼과 뱅상 카셀, <로보캅>(2014)의 조엘 키나먼 등을 만나는 것도 영화 보는 재미를 더한다. 청소년 관람 불가, 28일 개봉.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사진 누리픽처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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