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 전반부 ‘창작노트’ 다큐 형식
컬러 후반부 여행지 로맨스 그려
일본 고조시 배경 한일 합작 제작
컬러 후반부 여행지 로맨스 그려
일본 고조시 배경 한일 합작 제작
한 장소에서 벌어지는 두 이야기. 서로 확연히 다르지만, 어쩌면 같은 것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감독조합상을 받고, 여러 국제영화제에 초청받은 <한여름의 판타지아>(감독 장건재)가 11일 개봉한다.
영화는 두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먼저, 영화감독 ‘태훈’(임형국)은 새 영화를 찍기 위해 일본의 지방 소도시인 나라현의 고조시를 찾는다. 조감독 ‘미정’(김새벽)과 함께 쇠락해가는 읍내 곳곳을 누비며 현지 주민들을 인터뷰하고, 거기에서 차로 한 시간 더 들어가는 시노하라 마을까지 들른다. 그곳에서 문을 닫은 지 25년 된 폐교를 찾는다. 흑백 화면으로 표현된 전반부는 인터뷰가 이어지는 다큐 형식을 띠었다. 마치 감독의 창작 노트를 엿보는 느낌이다. 감독은 뭔가 영감이 떠올랐을까.
영화의 두번째 부분인 후반부는 컬러 화면으로 갑자기 전환된다. 한국에서 혼자 여행을 온 ‘혜정’(김새벽)은 역 앞에서 우연히 현지 청년 ‘유스케’(이와세 료)를 만난다. 친절한 유스케는 마을 안내를 자처하고, 평범한 대화가 이어지지만 서로한테서 편안함과 설렘을 느낀다. 전반부 감독과 미정이 함께 찾았던 시노하라 마을과 그곳 폐교도 둘러본다. 유스케는 한국으로 돌아가려는 혜정한테 “오늘 밤, 불꽃놀이 축제에 같이 갈래요?”라고 묻는다. 이틀 동안의 짧은 동행 속에서 두 남녀가 서로한테 빠져드는 모습은 1996년에 개봉한 <비포 선라이즈>(이선 호크·줄리 델피 주연)를 많이 닮았다.
이처럼 영화 속 두 이야기는 장소와 일부 배우가 같을 뿐이지 전혀 다른 분위기,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관객은 무언가 비슷한 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전반부 영화감독의 고조시 탐방 속에선 한여름 땡볕 아래 시간과 공간의 깊이를 담았고, 낯선 언어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스크린에 가득하다. 후반부 여행자와 현지인의 로맨스는 ‘연인의 운명적 만남’이라는 굵직한 서사보다 아련한 정서를 채웠다.
영화의 두 부분은 같은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전반부에선 내일 고조시를 떠나야 하는 영화감독이 예고 없는 불꽃놀이 장면에 놀라 하늘을 올려보고, 후반부에선 고조시의 마지막 밤을 보내는 혜정이 여관 창문 밖으로 불꽃놀이를 내다본다. 두 사람은 같은 불꽃놀이 장면을 보고 각각 무엇을 느낄까. 아니, 관객은 두 불꽃놀이 장면에서 무엇을 느끼게 될까. 영화의 진짜 묘미는 낯선 여행지가 전해오는 정서적 울림인 셈이다.
다만, 영화의 전반부에서 감독이 어떤 영화를 만들지 고민하는 대목에선 불편함을 느끼는 관객도 있을 듯하다. 보통 관객은 만들어진 결과물인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간 것인데, 감독의 ‘개인적 고민’까지 들어줘야 하는지 의문인 것이다. 또 고조시의 쇠락을 그렸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그보다 더 낡고 버려진 농촌 마을이 너무 많다.
칸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 등을 수상한 일본 감독 가와세 나오미가 공동제작에 참여했다. 그가 이끌고 있는 나라국제영화제의 제작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장 감독한테 연출을 맡긴 것이다. 촬영팀도 가와세 감독 쪽 스태프들이다. 영화 제작에는 일본을 무대로 하고, 일본 배우를 쓴다는 조건 등이 붙었다고 한다.
안창현 기자, 사진 ㈜인디스토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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