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자료원은 7일 해방 후 첫 문예영화 중 하나인 이규환(1904~82) 감독의 1948년작 <해연>을 일본에서 발굴해 공개했다. 이 작품은 50~60년대 한국 영화계 대표 여배우로 활약했던 조미령(86)씨의 데뷔작이기도 하다. 사진이 바로 조미령 씨다.
1948년작 영상자료원 일본서 발굴
86살된 출연배우 조미령씨 ‘감회’
86살된 출연배우 조미령씨 ‘감회’
한국영상자료원은 7일 해방 후 첫 문예영화 중 하나인 이규환(1904~82) 감독의 1948년작 <해연>을 일본에서 발굴해 공개했다. 이 작품은 50~60년대 한국 영화계 대표 여배우로 활약했던 조미령(86)씨의 데뷔작이기도 하다. 조씨는 이 작품의 제작자인 이철혁(작고)씨와 결혼했다.
현재 아들과 미국 하와이에서 살고 있는 조씨는 데뷔작을 찾았다는 소식을 듣고 영상자료원을 통해 소감을 전해왔다. 당시 19살이던 그는 “흥분돼 잠을 설쳤다”면서 당장 귀국해 보고 싶은 마음이지만, 고령에 건강 문제로 비행기를 탈 수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두번째 작품인 <춘향전>(이규환 감독)도 남아 있지 않아 안타까웠는데 고마운 소식입니다. 당시에는 제작자나 감독들이 영화를 보관하지 않아 원판 필름이 많이 사라졌어요. 한국도 아닌 일본에서 발견됐다니 잃어버린 가족을 만난 기분입니다.”
그는 애초 연극 무대에 서다가 이 감독을 만나 영화에 데뷔한 사연도 소개했다. “출연 배우들 대부분 연극 출신이에요. 그 뒤 한국전쟁 전후로 그분들은 모두 이북으로 가셨고 나 혼자 남았죠.”
대부분 부산 감화원에서 이뤄진 촬영 상황도 정확하게 기억난다는 그는 ‘다이어트’를 했던 일화를 전하며 웃기도 했다. “스태프들과 합숙했는데 식사는 대부분 꿀꿀이죽이었어요. 근데 그게 너무 맛있더라고. 그래서 많이 먹었고 촬영 중 살이 너무 쪄서 제작자들이 말릴 정도였어요. 그래서 촬영 전후 줄넘기를 하며 살을 뺐죠.”
그는 ‘최은희 선배와 자주 통화한다’며 “전날도 <해연> 발굴 소식을 전하니 축하해주었다”고 전했다. “그 시절 여배우는 이제 우리 둘밖에 남지 않았죠.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배우 조미령을 기억해주시니 감사드리고 또 한번 관객과 만나게 돼 무척 기쁩니다.” 그와 가까이 지내온 원로배우 이해룡씨는 조씨의 가족들과 함께 7일 첫 공개 시사회에도 참석했다.
흔히 ‘갈매기’라는 별칭으로 불려온 영화 <해연>은 그동안 원본 필름의 향방이 알려지지 않았다. 영상자료원 수집부는 일제강점기 한국 관련 영상물을 찾고자 지난해 일본 엔에이치케이(NHK)아카이브, 영상자료원 등으로 조사를 갔다가 고베 영화자료관의 보존고에서 필름을 확인했다. 한자로 ‘海燕’(해연) 제목이 적힌 필름캔 속에 9롤의 35㎜ 질산염 필름이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담겨 있었다. 야스이 요시오 고베영화자료관장은 “3년 전 고물상에서 발굴했다”고 전했다. 보존 목적의 ‘듀프 앤 사운드 네거티브’와 ‘상영용 프린트’ 필름으로 복사해 지난달 반입했다.
<해연>은 47년 말 촬영을 시작해 이듬해 10월에 완성된 작품으로 개봉 때 신문 광고에 ‘해방 후 최초의 문예영화’라고 소개한 35㎜ 발성영화다. 원본 필름의 리더 부분에는 ‘공보처’의 검열 직인도 찍혀 있다. 이 영화는 부산 상영 중 당국에 압수되는 사건도 겪었다.
감화원은 고아나 부랑 소년을 모아 형무소에서 분리해 집단생활을 시키며 농업과 공예 등을 가르치는 곳이다. 철수(박학)와 파혼한 뒤 이곳을 찾아 교사로 일하는 정애(남미림)와 언니를 잠시 방문한 동생 정숙(조미령)이 사랑으로 감화원 소년 수길(최병호)을 변화시키는 줄거리다.
데뷔작 <임자 없는 나룻배>(1932)와 <나그네>(1937)로 잘 알려진 이규환 감독은 민족정신을 담아 사실적으로 현실을 그린 작품들을 만들어 한국 영화사에 중요한 자취를 남겼으나 필름은 은퇴 기념작 <남사당>(1974)만 보존돼 있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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