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편에 이르는 영화 <배트맨> 시리즈를 제작 총괄한 마이클 유슬란(64)이 한국 콘텐츠 산업의 잠재력을 한껏 치켜세웠다. 어슬랜은 지난 13일 서울 대학로 콘텐츠코리아랩(CKL)에서 한국콘텐츠진흥원 주최로 열린 강연에서 “차세대 캐릭터와 스토리는 한국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한국의 영화제작자, 작가, 감독, 아티스트들과 손을 맞잡고 글로벌 프랜차이즈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어슬랜은 1989년부터 2010년까지 배트맨 시리즈 10편에 이어 <배트맨 비긴즈> <다크나이트 라이즈> <캣우먼> 등 확장 시리즈 5편도 제작했다. 내년 초에는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이 개봉될 예정이다.
2007년 이래 다섯 번째 방한한 그는 “한국에서 영화, 드라마, 가요 등 풍부한 콘텐츠가 계속 등장하고 있다”며 “한국의 콘텐츠 문화가 전세계 글로벌 브랜드를 대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이어 “캐릭터와 스토리는 진정성과 독창성이 중요한 요소”라며 “동양 문화권의 시각에서 보는 캐릭터와 스토리에 대한 대중의 수요와 갈증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글을 깨치기 전인 4살부터 만화책을 보기 시작해 고교 졸업 때까지 3만권이 넘는 만화책을 수집한 ‘만화광’이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최근 4만5천 권에 이르는 만화책을 자신의 모교인 인디애나대학 도서관에 기부하기도 했다. “만화·영화·애니메이션을 어떻게 하면 일에 접목할 수 있을까 늘 고민했다”는 그는 운 좋게도 대학 신입생 때 기회를 얻었다.
“마침 대학에서 실험적인 교육과정에 대한 아이디어를 모으기에, 만화 이론 수업을 제안했는데 덜컥 뽑혀서 만화 교수가 됐어요. 정말 황홀했어요.”
마케팅이 없다면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던 그는 “한 유력 언론사에 전화를 걸어 기자에게 다짜고짜 ‘인디애나대학에서 세계 최초로 만화를 가르치는 대학생이 있다는데 왜 취재를 하지 않는 겁니까’라고 직접 제보했어요. 그렇게 인터뷰가 대서특필됐죠. 그걸 보고 ‘신’과 같은 존재였던 마블 코믹스의 스탠 리가 전화를 걸어오면서 그와의 영원한 우정이 시작됐고요.”
8살 때부터 ‘인간적인 히어로’ 배트맨과 사랑에 빠졌다는 그가 배트맨 시리즈 제작에 나서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66년 1월 텔레비전에 처음 등장한 배트맨의 모습 때문이었다. “방송에서 배트맨을 비웃음거리로 묘사해서 마음이 아팠어요. 그래서 진짜 배트맨을 보여줘야겠다고 다짐했지요.” 그는 79년 디시 코믹스로부터 배트맨 영화 판권을 사들였지만 할리우드 스튜디오를 설득해 첫번째 영화를 제작하기까지 10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는 “팀 버튼 감독, 디자이너 앤턴 퍼스트,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 등 3명의 천재를 만나면서 배트맨에 대한 문화 자체를 새로 정립했다”고 돌아봤다.
어슬랜은 20여년에 걸쳐 시리즈의 성공을 이끌고 확장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이렇게 정리했다.
“여러분, 누가 ‘정말 당신은 최악’이라고 해도 절대 믿지 말길 바랍니다. 동시에 누가 ‘너 훌륭하다. 아이디어 정말 멋지다’라고 해도 믿지 말길 바랍니다. 자신 외에는 아무도 믿지 마세요. 대중의 관심과 비평가들의 비판에 연연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열정을 충족할 수 있는 일을 하세요.”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