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 영화’ <도둑들>(2012)의 최동훈 감독이 <암살>을 들고 22일 관객들을 찾아온다. 180억원 이상의 순제작비에 전지현, 하정우, 이정재 등이 주연한 한국판 블록버스터로 관객들의 기대감도 높다. 과연 상반기 한국 영화의 전반적인 부진을 씻고 올해 첫 1000만 영화가 나올까.
배경은 1933년 중국과 조선. 조국은 사라지고, 상해 임시정부는 조선주둔군 사령관과 친일파 ‘강인국’(이경영)을 암살하는 작전을 꾸민다. 백범 김구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는 임정 경무국 대장 ‘염석진’(이정재)은 이 작전을 위해 일본 쪽에 노출되지 않은 대원 세 명을 차례로 불러 모은다. 한국 독립군 제3지대 저격수 ‘안옥윤’(전지현)과 신흥무관학교 출신 ‘속사포’(조진웅), 폭탄전문가 ‘황덕삼’(최덕문) 등이 그들이다.
암살단은 경성으로 잠입해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작전은 5분 안에 끝내고 우리는 살아서 돌아갈 겁니다.” 암살단 대장을 맡은 안옥윤은 이렇게 강조한다. 하지만, 이들의 작전은 의외의 암초를 만나게 되니, 의외로 아주 가까운 곳에 일본의 밀정이 있었던 것이다. 일본의 밀정은 이미 암살작전의 전모를 일본군 헌병대에 알렸을 뿐 아니라, 급기야 경성으로 직접 들어와 이들한테 총구를 겨눈다.
여기까지 ‘독립군 대 친일파(일본군)’의 대립 구도에 충실한 듯 한데, 감독은 또 하나의 변수를 영화에 추가했다. 상하이의 전설적인 살인청부업자 ‘하와이 피스톨’(하정우)과 그의 충복 ‘영감’(오달수)의 등장이다. 염석진은 하와이 피스톨에게 거액을 건네면서 암살단의 제거를 의뢰하고, 하와이 피스톨과 영감은 경성으로 향한다.
영화는 ‘배우들의 잔치’라 부를 만큼 유명배우들이 잇달아 등장해 관객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도둑들>에서 김윤석, 김혜수, 김수현 등을 빼고, 대신 조진웅이 새로 들어간 셈이다. <도둑들>이 여러 배우들의 앙상블과 김윤석과 김혜수의 로맨스를 기둥으로 삼았다면, 이번 <암살>은 전지현이 사실상 원톱으로 영화를 마지막까지 끌고 나간다. 최동훈 감독은 13일 시사회 뒤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도둑들>을 끝내고 이번 작품에 매달렸다. 1년 동안 쓴 시나리오를 폐기하는 등 고난의 시간이었다. 이번 작품이 나에겐 새로운 전환점이 될 듯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배우들을 많이 보여주려는 감독의 욕심 때문일까. 영화는 전지현, 하정우, 이정재 등 주요 배우에 대한 설명에 각각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그러다 보니 상영시간이 139분(2시간 19분)으로 길어졌다. 영화가 결정적인 인물의 정체를 초반부에 ‘너무 쉽게’ 드러내는 바람에 극적 긴장감이 떨어진 상황이라, 상영시간이 더욱 길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정우의 마지막 장면은 왜 영화 주인공은 총을 맞아도 쉽게 죽지 않는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영화 후반부에 누군가의 ‘출생의 비밀’이 새로 드러나고 이것이 영화를 끌고나가는 주요 추진력이 되는데, 억지스럽게 느낄 관객도 많을 듯하다. 총격전 위주인 액션 장면은 차에 매달려 기관단총을 쏘는 장면 등에서 1930~40년대 배경의 미국 마피아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데 그친다.
반면, ‘생계형 독립군’이라고 하는 조진웅은 이제껏 나온 독립군 영화 가운데 처음 나오는 매력적인 인물이라는 평가가 많다. “독립운동이라는 것도 배가 불러야 한다”고 하는 닳고닳은 인물처럼 보이지만, 가슴 속 깊은 곳엔 진정한 분노와 용기를 갖고 있다. 영화 출연 분량이 너무 적은 게 아쉬울 정도다. 하정우가 연기한 하와이 피스톨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릴 듯 하다. 하와이 피스톨은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를 언뜻 떠올리게 하는데, 애국심과는 거리가 멀고 바람둥이 느낌까지 주지만 할 일은 똑부러지게 해낸다. 그가 쓰는 소음기 달린 권총은 제임스 본드가 쓰는 총과 동일한 기종이다. 좋은 의미에서 영화 전체의 무게를 줄여주는 구실을 하지만, 나머지 인물들과 홀로 ‘족보’가 달라 따로 논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다.
사회주의 계열의 약산 김원봉이 백범 김구와 합동으로 암살작전을 준비한다는 설정이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등장한 것은 기존의 독립군 영화에서 한걸음 나아간 장면들로 꼽힌다.
<암살>은 22일 개봉으로 영화판의 성수기인 여름 시장의 포문을 처음 연다. 한 주 뒤인 30일 <미션 임파서블 : 로그네이션>이 개봉하지만, 적어도 한 주 동안은 독무대인 셈이다. 또다른 기대작인 <베테랑>(감독 류승완)도 개봉일이 다음달 5일로 잡혀있다. 전작 <도둑들>의 좋은 성적(1298만여명)에 인기 배우들이 ‘총출동’한 <암살>이 어떤 성적을 거둘까. 이 영화의 손익분기점은 600만~700만명 수준이다. 22일 개봉. 15살 이상 관람.
안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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