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영화·애니

‘유리의 사도’ 감독 재일동포 2세 김수진씨

등록 2005-10-10 17:38수정 2005-10-10 17:38

부산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윗세대’ 슬픈역사 영화로 남겨야죠
재일동포 2세 김수진(51)씨. 연극계에서 그는 명사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극단 신주쿠양산박의 대표다. 갈무리 대목에서 무대 뒤를 가린 천막이 걷히며 10m 크기의 비행기가 눈앞에서 날아갔던 <바람의 전설>(지난 7~9월)과 뗏목을 타고 한강을 가로질러 건너편 둔치의 무대 위로 배우를 등장시켰던 <인어전설>(1993년)을 한국 관객은 잊지 못한다. 그가 이번엔 영화를 들고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조감독은커녕, 촬영 보조도 해보지 않았던 그가 만든 두 번째 영화, <유리의 사도(Dreaming of Light)>다.

양석일 원작 영화화
‘밤을 걸고’ 서 불행한 삶 조명
2부선 사랑 얘기 극대화
‘언젠가는 꼭’ 완성해야죠

“아, 걱정돼요. 관객들이 이 영화를 너무 어려워하지 않을까 해서요.” 보자마자 대뜸 던진 한 마디다. 약간의 흥분과 염려가 뒤섞여 있다. 은유와 상징이 많은 데다 판타지가 두드러진 탓일 것이다. 사실 닫힌 사각의 무대를 무한 공간으로 확장한 연극연출부터가 그가 추구하는 마술적 사실주의의 특장을 잘 보여준다.

‘윗세대’ 슬픈역사 영화로 남겨야죠-김수진씨
‘윗세대’ 슬픈역사 영화로 남겨야죠-김수진씨
한 노인이 커다란 렌즈를 엉덩이로 닦다 쓰러진다. 어수룩하고, 행동은 과장된 이케야. 작은 유리 제조 회사의 사장이다. 천체망원경에 쓰일 커다란 렌즈를 손수 가공해낼 이는 동양에서 그가 유일하다. 하지만 회사가 망해 곧 넘어갈 지경이다. 사랑에 실패해 자살하려던 요코와 요코의 사랑을 도무지 눈치채지 못하는 이케야의 부하직원 요지로가 그런 회사를 살리려고 함께 힘을 모은다. 조금만 더 닦아내면 하나의 생명을 얻게 될 렌즈를 구하는 일이기도 하다.

“렌즈는 그냥 유리일 뿐이지만, 세공된 ‘각도’에 따라 보이는 세상은 달라지잖아요. 그 각도를 만들어내는 일은 바로 사람의 몫입니다.” 요코는 댐을 만들면서 물에 잠긴 학교를 찾아가 렌즈를 닦아낼 부드러운 모래를 구하고 숨죽인 채 잠겨있는 오르간을 연주한다. 간절한 꿈은 반드시 현실이 되고, 꿈이야말로 오래전부터 자신을 실재로 만들어줄 인간을 기다리고 있는 듯 비친다.

“현실로 만들 수 있는 판타지가 내 안에 있다는 걸 이미 깨달았죠.” “연극하듯 만들었다”는 첫 작품 <밤을 걸고>(2002년)를 두고 한 말이다. 재일동포 1세대들의 슬픈 역사를 그린 재일동포 양석일의 원작을 ‘무모하게’ 영화로 만들겠다고 생각했다. “1세대들의 역사를 반드시 남겨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고, 연극으로 만들기에는 스케일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일동포 영화감독 최양일씨는 10억엔(100억원)이 들 거라며 주저했던 작품. 신주쿠양산박 단원들이 직접 군산에 세트를 짓는 등 40억엔짜리 한일 합작영화를 완성했고, 곧바로 일본 영화감독협회가 주는 최우수 신인감독상과 마이니치영화상 미술상까지 거머쥐었다.

김 감독은 <밤을 걸고> 2부인 <언젠가는 꼭>을 준비하고 있다. <유리의 사도>마저 “2부작을 위한 영화 공부 과정”이라고 설명할 만큼, 1세대 동포들의 삶을 ‘금강석’에 새겨놓는 일이 그에겐 절실하다. 원작대로 2차 세계대전 패전 뒤, 폐허가 된 일본의 오사카 군수공장에서 훔친 고철로 연명했던 조선인의 불행한 삶을 그린 1부에 이어, 2부에서는 이들의 사랑을 극대화할 참이다. “이번 영화제에서 <너는 내 운명>을 봤습니다. 그런 진한 감정들을 그리려고 했는데, 이미 구상해 놓은 장면들도 영화에 담겨 있어서 너무 놀랬어요. 많이 울었습니다.”


<유리의 사도>에는 영화의 주인공(이케야 역)이자 시나리오까지 쓴, 일본 연극계의 거장 가라 주로의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다. 그를 스승으로 삼는다는 김 감독도 “감독으로서 시나리오를 뛰어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한다. “연극은 일단 무대 막이 시작하면 배우가 책임지지만, 영화는 전체가 감독의 책임인 걸 절감했다”고 설명하는 이유다.

부산/글·사진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