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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부산영화제 강타한 기대주 3명

등록 2005-10-12 17:33수정 2005-10-13 15:25

10년새 부산국제영화제는 한국 영화계의 기대주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곳으로 자리매김했다. 신인 감독들의 장편 데뷔작을 경쟁 심사하는 ‘새로운 물결’ 부문에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한국 영화의 강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 부문에 출품된 <용서받지 못한 자> <피터팬의 공식> <썬데이 서울>은 저마다 다른 개성으로 오늘의 젊은 한국 영화가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세 작품의 감독을 부산에서 만났다.

“군 조직속 개인을 담고 싶었어요”

‘용서받지 못한자’ 윤종빈 감독

“넌 임마, 먼저 어른이 되어야 해.” 갓입대한 이등병 승영이 군 조직의 비합리성을 성토할 때 병장 태정이 던져준 말이다. 둘은 중학교 동창이다. 군대는 개인의 합리성을 무장해제시키고, 그 깨달음을 체화하며 서서히 변해갈 때 한국 남성은 비로소 군대와 다를 바 없는 이 사회의 ‘어른’으로 성장한다.

올해 독립영화계의 최고 수확이라고 평가받는 <용서받지 못한 자>를 만든 윤종빈 감독은 이렇게 설명했다. “변해버린 나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옳은가, 잘 사는 건가’란 회의에서 시작한 영화죠.” 흔하고 지루한 군대 이야기 가운데 무용담을 털고 고생담을 줄이고, 축구 이야기를 빼니 오롯하게 ‘사람’과 ‘관계’만 남는다. 군대에 관한 영화라기보다, 뭇사람들의 삶을 미시적으로 조망한다.

26살 영화학도 ‘깜짝 졸업작품’ 올 ‘독립영화계 최고수확’ 평가

“군대의 폭력성을 고발하려는 게 아니예요. 큰 주제에 맞춰 모든 요소를 꿰어 맞추는 접근 방식이 싫습니다. 그냥 개인을 담고 싶었어요.” 26살 영화학도(중앙대 연극영화과)의 지난해 졸업 작품, 또는 2002년 1월 현역 제대한 ‘예비군’의 작품이란 점을 상기하는 게 외려 영화 읽기를 방해한다. 영화는 그냥 영화로 우뚝 서 있다.


병장 태정과 이등병 승영이 한 부대에서 만난다. 군대의 생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물 위의 기름처럼 부유하는 승영을 태정이 감싸준다. 하지만 태정이 제대하면서 완전히 고립된 승영은 서서히 변할 수밖에 없고, “군대를 바꾸겠어”라는 선언도, “후임이 오면 정말 잘해 줄거야”란 다짐도 공수표가 된다. 결국 자신의 직속 후임인 지훈은 자살한다.

죄의식에 사로잡힌 승영이 태정을 찾아가는 하루 동안의 현재와 그들이 선후임으로 만나던 1년 전의 과거가 긴장감 있게 교차한다. 관계를 맺는 한 죄는 대물림되지만, 누구도 죄의 근원은 따지지 않고, 누구의 죄가 더 작은 것인지만 놓고 다툴 뿐이다. “남들은 더 하는데 나 정도야… 하는 거죠. 합리화하지 않고선 살아갈 수 없는 게 사람인 겁니다.” 결국 누구도 용서받지 못한 채 자기 합리화를 하거나 망각한 채 살아가는 셈이다. 그것마저 되지 않는다면? 승영도 결국 자살하고 만다.

삶의 이러한 처연함은 시종 영화에서 ‘부각 되는 중심 인물들의 뒷모습을 통해 잘 투영된다. 목을 매려고 화장실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지훈의 뒷모습, ‘좋은 고참’이란 한 마디로 용서를 받고 싶었던 꿈 속의 승영,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던 태정의 뒷모습. 죄를 짓게 하는 시대다. 그 죄값을 개인의 것으로 환원시키는 사회다. 정작 용서는 이 시대와 사회가 구해야 할 몫이지만, 윤 감독은 굳이 그 대목에 방점을 찍지 않는다. 봄볕 스미는 화장실 창문을 마주한 채, 군화끈을 목에 묶은 지훈과 핏빛 물든 욕조 안에서 영면한 채 음악을 듣는 승영만 나른하게 비출 뿐이다.

부산/글·사진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소년의 10년뒤 모습, 속편도 만들고파”

‘피터팬의 공식’ 조창호 감독

<세친구> 연출부로 시작해 <파란 대문> <나쁜 남자> 등 김기덕 감독의 여러 작품에서 조감독을 했던 조창호(33) 감독은 기회가 여러번 있었음에도 부산국제영화제를 올해 처음 찾았다. “외로울 것 같아서요. 서울에 혼자 남아서 외로운 것보다 사람들 북적이는 데서 소외감 느끼는 게 더 외롭잖아요.” 그동안 부산을 찾지 않았던 이유를 이야기하는 데서 그의 첫영화 <피터팬의 공식>의 주인공 한수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19살, 이제 피터팬 이야기가 동화라는 걸 인정해야 하는 나이의 수영선수 한수는 어느날 갑자기 수영을 그만둔다. 수영부 유일의 기대주가 그만두는 걸 말리는 코치에게 “잘해봤자 아시아 최고밖에 더 되겠어요”라고 말하는 한수에게는 아이와 어른 사이에 놓여 있는 소년의 삶에 걸린 피로함과 어렴풋이 깨달은 삶의 허무함이 묻어나온다. 이유도 없이 수영을 그만둔 한수의 삶에는 엄마의 자살 시도와 그로 인한 병원비와 엄마의 빚 문제, 처음 알게 된 아빠의 존재, 옆집에 이사 온 여선생이 주는 성적 긴장 등이 하나 둘씩 쌓이며 혼란을 가중시킨다. <피터팬의 공식>은 말수 적은 소년 한수가 겪는 성장통을 섬세하지만 냉정하게 그린 영화다.

한때 함께 일한 김기덕 감독 “잘봤어 훌륭해” 문자메시지

“어느날 문득 ‘수영을 잘 하던 소년이 수영을 그만둔다’는 문장이 머릿 속에 떠올라서 그 문장을 시작으로 시나리오를 쓰게 됐어요. 왜 그는 수영을 그만둔다고 했을까. 수영을 그만둔다면서 물 속에 왜 그토록 오랫동안 잠수를 했을까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이 이 작품을 찍는 과정이었어요.”

영화를 만든다는 건 “해답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문제를 던지고 몸이 부서지도록 그 해답을 찾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라고 정의 내리는 조창호 감독은 고등학교 때 처음 영화를 봤을 정도로 “순진한 시골 아이”였다고 자신의 성장기를 회고한다. “고1때 자취하던 방 옆에 작은 극장이 있었는데 처음 본 영화가 <아웃 오브 아프리카>였어요. 말하기 민망하지만 그 영화를 보면서 아, 이게 내 인생의 첫이야기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죠.” 서울예대에서 연출을 전공한 뒤 그의 이력에서 두드러지는 건 김기덕 감독과의 작업이다. 이 정보를 알고 있는 관객이라면 어른이 되는 길 앞에서 엄마의 자궁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어하는 한수의 성적 방황에서 김기덕 감독과의 연관성을 찾게 된다.

“좋아하는 감독이죠. 감독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그려내는 방식도 존경하구요. 그렇지만 세상이나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에서는 분명 나눠지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날 표를 못구해 입석으로 이 영화를 본 김기덕 감독이 ‘잘 봤어. 훌륭해’라고 남긴 문자 메시지를 조 감독은 슬쩍 보여줬다. 성장영화란 특정한 시기의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그는 “이 작품이 망하지 않는다면 10년 뒤 한수의 삶을 속편처럼 만들어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부산/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엘제이필름 제공


“현장서 시나리오 쓰면 신나게 찍었죠”

‘썬데이 서울’ 박성훈 감독

박성훈(36) 감독의 <썬데이 서울>은 제10회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 상영작 가운데 눈에 띄게 제멋대로 홀딱 깨는, 그래서 돋보이는 탈장르 혹은 잡장르 영화다. <에스 다이어리>, <새드무비> 등의 영화에서 프로듀서를 맡다가 <썬데이 서울>로 장편영화 감독 데뷔를 하면서 “작정하고 잘 놀았다”는 박 감독에게서 지난 9일 그 신나는 난장의 후기를 들어 봤다.

“시나리오는 ‘일주일 동안’ 열심히 썼는데 분량은 50쪽밖에 안 됐어요. 시나리오로는 개념만 잡고 디테일한 부분은 현장에서 스태프, 배우들의 의견을 듣고 만들어 나갔죠.”

“썬데이 서울 모르는 세대는 왜들 웃는지 나도 궁금해요”

35억원이 들어가야 할 영화를 7억원으로 만들면서 시나리오조차 미완성인 채로 촬영에 들어갔다니, ‘상식 밖의 영화’를 만든 감독다운 ‘상식 밖의 배짱’이었다. 그가 이렇게 대책 없는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알려진 대로 선개런티를 받지 않고 영화제작에 참여한 스태프와 배우들 덕분이다. “그 덕에 예산 7억으로 ‘100만원씩이나’ 남겨가며 영화를 찍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모두가 능동적으로 함께 영화를 만들었다는 거예요. 돈 문제를 벗어나니 다들 즐겁게 노는 기분으로 영화를 만드는 데 더 적극적이 됐죠.”

박 감독과 배우, 스태프들이 이렇듯 신나게 놀면서 찍어낸 영화 <썬데이 서울>은 논리의 고정관념에 얽매이지도, 장르의 관습에 구애받지도 않으며 자기만의 상상력을 선보인다. 호러·무협·SF·코미디 등 온갖 장르를 넘나들면서 에피소드마다 늑대 인간과 귀신, 무예 고수, 외계인 등 ‘인간이 아닌 인간’들을 등장시켜 <썬데이 서울> 잡지에 나올 법한 시시껄렁한 얘기들을 제멋대로 풀어간다. 관람석에서도 박장대소는 터지지 않지만 여기저기서 키득키득 시시덕 ‘시시껄렁’에 걸맞은 웃음들이 새어나온다.

박 감독은 이 시시껄렁하게 기발한 상상력의 원천에 대해 “하와이안 셔츠와 백구두를 차려입은 두 할아버지가 치고 빠지고 박고 내빼는 광경을 목격하다가 그들의 젊은 시절이 떠올랐고, 너무 조용하게 식사를 하는 가족들을 보면서 혹시 귀신이 아닐까 싶었다”고 말한다. 일상 속에서 떠오른 남들과 약간 다른 상상력이 그 원천이었다는 것. 하지만 그 상상력과 팀워크에 기대 “자본의 논리나 영화의 논리에 따르지 않고 크리에이티브의 논리를 따라 영화를 만들었다”는 자신만만한 감독에게도 사실 고민은 있었다.

“<썬데이 서울> 잡지를 모르는 젊은 세대들이나 외국인들에게 이런 이야기가 먹힐까 사실 좀 걱정이 됐어요. 그런데 외국인들이나 젊은 관객들이 더 큰 반응을 보이더라고요. 저도 궁금해요, 왜들 웃는 건지(웃음).”

부산영화제에서 관객들에게 신선하고 도발적인 웃음을 선사한 <썬데이 서울>은 주요 관객층이 될 고교생들의 일정에 맞춰, 수능이 끝나는 11월23일 개봉할 예정이다.

부산/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사진 ㈜필름놀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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