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영화 <춘희막이>는 46년째 한 지붕 아래 살고 있는 ‘본처’와 ‘후처’ 이야기를 그린다. 남편도 자식도 떠난 자리에서 서로의 곁을 지키고 있는 두 할머니의 모습은 <워낭소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잇는 진한 감동을 전한다. 올댓시네마 제공
‘절대 가까워질 수 없는 사이지만, 결국 세상 누구보다 가까워진 두 할머니 이야기.’
<춘희막이>는 경상북도 영덕의 한 마을, 한 지붕 아래서 46년째 기막힌 동거를 하고 있는 ‘본처’ 최막이(90) 할머니와 ‘후처’ 김춘희(71) 할머니의 삶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1960년대까지 아들 없는 집에 씨받이를 들이는 일이 흔했다. 어떤 집에서는 아이를 얻은 후 씨받이를 내치고 어떤 집에서는 첩으로 눌러앉히기도 했다”는 자막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 시절엔 그랬다.
막이 할머니는 아들 둘을 낳았다. 하지만 1959년 닥친 태풍 사라호에 첫아들을 잃었다.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둘째 아들마저 홍역으로 잃게 된다. ‘집안의 대를 잇지 못한 죄인’이 된 막이 할머니는 남편의 후처를 스스로 물색한다. 정신지체 장애로 7~8살 지능밖에 되지 않는 춘희 할머니를 만난 막이 할머니는 “조금 모자라니 그나마 견디고 살지 싶어” 데려온다. 이후 1남2녀를 차례로 낳은 춘희 할머니. “아들을 얻었을 때 그냥 내보낼 수도 있었지만 양심상 도저히 그렇게는 못한” 막이 할머니는 춘희 할머니와 함께 사는 길을 택한다. 아이들은 모두 출가하고 남편마저 떠났지만 두 할머니는 서로의 곁에 남았다.
겉으로만 보면 구시대 악습이 낳은 ‘막장 스토리’ 같다. 하지만 두 할머니의 관계는 함께 견디며 켜켜이 쌓아온 세월의 더께만큼이나 굳건하다. 사사건건 잔소리를 늘어놓지만 막이 할머니는 자기 것 대신 춘희 할머니의 ‘쓰레빠’를 사는 속 깊은 정을 보여준다. 춘희 할머니는 또 어떤가. 교회에서 고아준 닭을 막이 할머니에게 먹일 기쁨에 들떠 종종걸음으로 집으로 달려온다. “내는 벌써 먹었다. 식기 전에 얼릉 먹어라.” 퉁명스런 그 말 한마디가 둘 사이에 흐르는 마음을 전한다.
특별한 스토리랄 것도, 연출이랄 것도 없다. 그저 농사짓고, 밥을 해 먹고, 장을 보는 두 할머니의 일상을 천천히 비출 뿐이다. 대사도 거의 없다. 두 할머니의 속마음은 ‘말’이 아닌 ‘투박한 행동’으로 표현된다. 고랑고랑 파인 주름과 구부러진 허리가 함께 살아낸 신산한 애증의 세월을 증명할 뿐, 둘 중 누구도 지난 46년 세월을 한탄하지도 푸념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영화는 어느새 ‘고요한 감동’을 전한다. 그 어떤 법으로도, 도덕으로도 심판할 수 없는 두 할머니의 삶, 그 신뢰와 정이 스크린을 타고 흐른다. 배경 설명이 없다면 늘 투닥거리면서도 서로를 아끼는 모녀나 자매 사이 같다. 병원에서 의사가 “(김춘희씨) 어머니 되세요?”라고 묻자 막이 할머니가 “(이이가) 우리 영감 세컨부(세컨드)요!”라고 답하는 장면에 이르러서야 이 ‘동거’가 얼마나 기막히고 얼토당토않은 일인지 새삼스레 다가올 정도다.
영화는 독립 피디 출신인 박혁지 감독이 2009년 오비에스 다큐 <가족: 여보게, 내 영감의 마누라>에서 다뤘던 소재를 다시 영화화한 작품이다. 박 감독은 2년간의 긴 재촬영을 통해 할머니들의 거칠고 느린 움직임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냈다. 방송 프로그램 제작으로 다져진 스토리텔링 능력이 빛을 발한 셈이다. 박 감독은 얼마 전 할머니들을 다시 찾아 막이 할머니의 구순 잔치와 영화 상영회를 함께 열었다. 막이 할머니는 영화 포스터를 보고 “못나게 나왔으니 어디에 가져다 쓰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워낭소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못지않은 먹먹한 울림과 감동을 주는 <춘희막이>. 흥행면에서도 두 작품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올라 씨지브이 아트하우스 배급지원상을 수상하는 등 이미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펀딩21(funding21.com/project)을 통한 소셜펀딩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30일 개봉.
유선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