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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숨겨진 것을 보는 민망함

등록 2015-09-29 19:05수정 2015-10-28 15:59

김영진의 시네마 즉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홍상수의 신작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같은 상황이 비슷한 듯 차이 나게 두번 되풀이되는 영화다. 처음 1부 ‘그때는맞고지금은틀리다’를 보는데 민망해서 혼났다. 특히 영화감독 함춘수를 연기하는 정재영의 눈빛, 상대방 여자에게 잘해주려고 어쩔 줄 모르는 모습에서 나오는 이런저런 동작이 소름을 돋게 했다. 그림을 그리는 여자 윤희정으로 나오는 김민희는 차분하게 함춘수가 던지는 일종의 구애를 거의 감상하듯 지켜보는데 격정의 내밀한 통제라는 점에서 숨이 막혔다. 최근 이렇게 배우의 말과 동작에 온 신경이 집중하게 만드는 영화는 본 적이 없다.

2부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가 전개되면서 민망해서 스크린으로부터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은 가신다. 함춘수는 훨씬 정직하게 돌직구에 가까운 화술로 윤희정을 대한다. 두 사람은 초반부터 티격태격한다. 함춘수가 윤희정의 그림을 비평하자 윤희정이 화를 내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들이 주고받는 말의 칼들이 편안했다. 1부의 숨 막힐 듯한 상호배려, 조심스러움, 본심을 최대한 부드럽게 포장하려는 구애의 말과 동작에 비해 2부는 툭 던지는 듯한 말과 상대의 어떤 반응에도 편하게 다 그런 것 아니겠느냐는 듯 구는 주인공들의 여유가 동일 인물이 아니라 상당한 시간 경과를 느끼게 하는 착각을 빚어낸다. 특히 2부의 술집 장면에선 1부에서와 달리 함춘수가 이상한 행동을 하는데 포복절도하게 되는 그 해프닝을 보면서 관객인 내가 해방감을 느끼니 그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함춘수는 술에 취한 그 자신의 행동에 대해 ‘그냥 답답했나 보다’고 대수롭지 않은 듯 윤희정에게 말한다.

답답한 건 여하튼 우리 인생 아닌가. 이런저런 행복한 척 최면을 걸고 쇼를 해도 우리가 하는 행동은 누군가 몰래 카메라로 찍어서 전시하면 어딘가 조금은, 혹은 많이 이상해 보일 것이다. 영화 속에서 함춘수의 팬인 여성이 ‘우리의 삶의 표면에 숨겨진 것들의 발견만이 우리의 두려움을 이겨내는 길이라는 생각에 공감합니다’라는 문구를 직접 적은 책을 선물하는데 무릎을 탁 쳤다. 그건 홍상수 감독이 이런저런 자리에서 늘 말했던 것들의 집적된 표현이기도 하다. 홍상수는 의미나 정의로 환원되는 것에 저항하는 감독이다. 말로 축약되거나 설명될 수 없는 것들의 실재를 꼼꼼하게 훑어보는 것에 그의 영화를 보는 즐거움이 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 펑펑 내리는 눈은, 짧은 인연의 시작일지 끝일지 모르는 남녀 주인공과 주변 사람들의 소소한 스토리에 덧입혀지는, 삶의 충만함을 일시적일지라도 축복하는 계시처럼 보였다.

나는 이 영화를 두번째로 보면 훨씬 더 재미있게 볼 것 같다. 곧 극장에 또 가서 볼 예정이다. 정재영, 김민희 두 배우가 기막히게 연기하는 호흡을 느긋하게, 최고의 듀오가 부르는 공연을 감상하듯이 느긋하게 낄낄거리면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언제가 맞고 틀리고가 뭐 중요한가. 어차피 흘러가는 인생이고 우리는 우리가 접하는 공기에, 그리고 관계에 진심의 호흡을 불어넣기 위해 애쓰면 그뿐이다.

김영진 명지대 교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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