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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호러를 찍었는데 코미디였다

등록 2015-10-10 10:25

영화 무서운집
영화 무서운집
[씨네21] <무서운 집> 구윤희 배우, 양병간 감독
올해의 기묘한 영화를 한편 꼽으라면 두말할 것 없이 <무서운 집>이다. 양병간 감독의 <무서운 집>은 지난 7월30일 단관 개봉 이후 온라인을 시작으로 컬트 팬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뉴타입 호러’를 표방한 이 영화를 두고 조롱과 찬사를 넘나드는 아슬아슬한 반응들이 쏟아진다. <클레멘타인> 등 역대 망작과 비교하며 ‘나만 당할 수 없다’는 심정으로 평점 9점을 주는 사람도 있고, 전복적인 상상력과 만듦새에 진심으로 찬사를 보내며 호응하는 이들도 있다. 평단의 호의적인 반응이나 블로거들의 심도 깊은 해석도 간간이 들려온다. 이 무시할 수 없는 목소리들의 근원이 장르 전복이건 꼴찌에 대한 위안이건 일탈에 대한 동경이건 사실 상관없다. 분명한 것은 <무서운 집>이 만들어낸 모종의 영화적 에너지가 사람들에게 어떤 감흥을 준다는 사실이다. 다양성, 진정성, 전복적인 화법 등 그것을 뭐라 부르건 간에 <무서운 집>이 퍼트리는 오묘한 신선함은 근래 한국영화에서 찾아보기 힘든 가치 중 하나다. 소규모 팬덤에 힘입어 8월8일 재개봉을 시작한 <무서운 집>은 이미 8주째 스크린을 지키고 있다. 실제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한 관객은 1천명 남짓하지만 8주간 상영은 분명 의미 있는 수치다. 상업영화의 잣대를 기준으로 한 만듦새와 무관하게 <무서운 집>은 이미 올해의 컬트영화로 자리매김한 셈이다. 구윤희 배우가 첫 관객과의 대화(GV)를 가진다는 소식을 듣고 뒤늦게나마 <무서운 집>의 양병간 감독과 구윤희 배우에게 만남을 청했다. 한때의 재미있는 관심거리를 넘어 2015년 기억해야 할 영화 중 한편으로 자리매김한 <무서운 집>에 대한 두 사람의 솔직한 속내를 들어봤다. 이보다 더 진지할 수 없을 만큼 한마디 한마디 정성을 담은 말들. 영화에 담긴, 영화를 향한 진심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지난 9월17일 광화문 미로스페이스에서 GV를 진행했다. 구윤희 배우는 첫 GV였는데 뒤늦게 GV를 하게 된 이유가 있나.

=구윤희: 처음엔 이 영화로 전면에 나서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딱 1년 전 기술시사를 했을 때 주변으로부터 가혹할 정도로 혹평과 상처를 받은지라 가슴이 아팠다. 도대체 왜 이런 영화를 찍었냐고 자기들이 다 창피하다는 말도 들었다. 영화는 내가 찍었는데 자기들이 왜 창피한지. (웃음) 감독이 제작비가 없어 엄마를 데리고 영화를 찍었다, 영화배우가 꿈인 와이프 소원 들어주려고 영화를 제작했다는 등 웃지 못할 댓글들도 숱하게 봤다. 불쾌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 뒤늦게 나온 건 이 영화를 좋아하고 호응해주신 분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어서다. 직접 만나서 인사를드리고 싶었다.

-어느덧 상영 8주차가 넘어간다. 재개봉도 이례적이지만 이렇게 오래 극장에서 상영되는 것도 기념비적이다.

=양병간: 아직도 배가 고프다. (웃음) 마음 같아서는 10주, 12주 계속 걸려 있으면 좋겠다. 여기까지 온 건 영화의 힘만으로는 될 수 없다. 도와주신 많은 분들, 인연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고 평가해주는 관객이 많았다는 게 가장 감사하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1993) 때는 이런 평가를 받을 기회가 없었다. 네티즌의 분석 중에는 깜짝 놀랄 만한 글들도 있었다. 그들의 글과 태도에서 앞으로도 영화가, 예술이 살아나갈 길이 있겠다는 희망을 봤다.

구윤희, 양병간(왼쪽부터). 씨네21 백종헌 기자
구윤희, 양병간(왼쪽부터). 씨네21 백종헌 기자

-GV도 여러 차례 가졌다. 관객과의 대화가 익숙한 문화는 아닐 텐데 직접 만나보니 무엇이 달랐나.

=양병간: 직접 관객을 만나보면 영화에 대한 꿈과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오늘날 많은 감독 지망생들이 넘치는 재능에도 불구하고 배급사 위주의 시스템에서 선택을 받지 못해 영화판을 떠난다. 나도 그랬고. 요즘은 누구나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시대다. <무서운 집>에 열광하는 관객을 보면서 적은 자본으로 진지하게 만든 영화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여건만 주어진다면 좋은 영화들이 쏟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흥분이 됐다.

-이해가 안 간다는 반응부터 영화의 만듦새가 조악하다는 지적까지 혹평도 적지 않았다.

=구윤희: ‘병맛이다’라는 둥 ‘병신 쩐다’는 둥 노골적인 반응들에 처음엔 충격을 받았다. 나는 웃기려고 찍은 적도 없고 가볍게 접근하지도 않았다. 매 화면 감독의 요구에 따라 진지하게 연기했고, 때로는 나 나름의 해석도 넣어가며 상황을 표현하려 했다. 찍을 땐 호러인 줄 알고 찍었는데 결과물을 보니 코미디더라. 찍을 때 의도를 알았으면 그렇게 연기하지 않았을 텐데. (웃음) 지금 와서 보니 그것까지가 감독님의 의도였던 것 같다. 진지함과 우스꽝스러움이 주는 괴리감 때문에 호의적인 반응이 이어지는 게 아닐까. 지금은 시대를 앞서간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살바도르 달리나 반 고흐의 그림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진가가 드러날 것이라 믿는다.

-연극배우 출신이고 영화는 첫 출연이다. 혼자 영화를 이끌어가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구윤희: 대본을 보고 혼자 하면 했지 다른 배우들이 있으면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웃음) 자신 있었다. 스스로는 이미 대배우라고 생각한다. (웃음)

양병간: 이런 당돌한 면이 마음에 들었다. (웃음) 예전에 출연했던 연극을 본 일이 생각나 꽤 오랫동안 설득했다. 몇 가지 원하는 조건이 있었다. 영화 현장 경험이 없는 사람이길 원했고, 기본기가 충실해야 했다. 혼자서 영화를 이끌고 갈 수 있는 뚝심, 한겨울에 3개월 동안 90회차 촬영했으니 인내심도 필요했다. 무엇보다 나를 전적으로 믿어주길 바랐다. 구윤희라는 배우를 만날 수 있어 다행이었다.

-‘구윤희 세트’를 팔 정도로 먹방이 인상적인데.

=구윤희: 진짜 배가 고파서 먹었다. (웃음) 한 장면을 수십번 찍는데 먹을 걸 제대로 주지 않는 거다. 그 와중에 먹는 장면이 있으니 얼마나 맛이 있었겠나. 구윤희 세트도 한번 먹어보고 싶었는데 아쉽지만 아직 못 먹어봤다.

-상영관을 보면 콘서트장을 방불케 한다. 영화 관람 중에 환호성도 들리고 박수도 쏟아지고.

=양병간: 이런 영화는 스필버그도 못 따라 올 거다. 박수와 폭소가 쏟아지는 걸 보고 짜릿했다. 함께 즐긴 관객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그들이 내게 영화를 계속 만들 수 있는 희망을 줬고, 이 영화가 그들에게 우리도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구윤희: 핵꿀잼부터 핵노잼까지 호불호가 뚜렷한 영화다. 극장을 찾아주신 분들은 재밌게 본 극소수의 관객이라 그런 반응이 가능한 것 같다. 당장 내 주변 사람들만 해도 이상한 감독에게 홀려서 이상한 걸 찍고 다닌다고 나를 나무랐다. (웃음) 동네에선 그냥 ‘107호’로 불리는데, GV 하기 며칠 전엔 동네 아줌마들이 여럿이 모여서 보면 재미있는 영화가 있다며 500원을 들고 오라고 하더라. 그게 <무서운 집>이었다. 그때 ‘화제는 화제인가 보다’ 했다. 내가 출연한 건 아직 아무도 모른다. (웃음)

-연출, 각본, 촬영, 편집 등 1인8역을 맡았다. 완전한 1인 영화, 1인 작업을 추구했던 건가.

=양병간: 음악을 작곡할 수 있었다면 음악까지 했을 거다. 영화를 구상했을 때 세운 원칙 두 가지가 한명의 배우, 한명의 감독이었다. 그런 시도를 해보고 싶었고, 가능하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만듦새를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적어도 나는 한 장면도 허투루 찍은 게 없다. 다만 집이 주는 공포를 기본으로 하되 표현되는 방식은 재미있길 바랐다. 어쨌든 영화는 재미있어야 한다. 이번 영화로 응원과 기대를 받아 기쁘기도 하지만 어깨가 무겁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2>를 포함해 차기작은 신중히 생각 중이다.

글 : 송경원 | 사진 : 백종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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