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판. 사진 그린나래미디어㈜·㈜콘텐츠게이트 제공
올해 칸 수상작 잇단 개봉
올해 제68회 칸 영화제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두 편의 영화가 한꺼번에 우리 관객을 찾는다. 황금종려상과 심사위원대상을 각각 수상한 <디판>과 <더 랍스터>이다. 사랑 이야기라는 흔한 소재지만, 새로운 ‘영화 체험’을 안긴다.
황금종려상 ‘디판’
‘전쟁의 땅’ 스리랑카 탈출 위해
가짜 가족 된 난민의 불안한 삶
실제 프랑스 망명한 반군출신 배우 심사위원대상 ‘더 랍스터’ 사랑을 찾지못하면 동물이 되거나
사랑에 빠지면 벌받는 기묘한 상황
우스운 상상 속 고약한 사랑 규칙
<디판>(감독 자크 오디아르)은 첫 장면부터 강하게 관객들 앞으로 육박한다. 반란군 장교로 보이는 ‘디판’(안토니타산 제수타산)은 죽은 전우들을 화장하고 군복을 벗는다. 전쟁에 신물이 난 듯하다. 그리고 카메라는 곧장 스리랑카 난민촌 깊숙이 들어간다. ‘얄리니’(칼리스와리 스리니바산)는 난민촌에서 9살짜리로 보이는 여자아이를 부지런히 찾는다. 부모를 잃은 한 아이를 찾아 손목을 이끌고 디판과 합류한다.
세 사람은 그 자리에서 한 가족 행세를 하게 되는데, 디판이 앞서 브로커한테서 내전 중에 죽은 한 가족의 여권을 구했기 때문이다. 디판도 여권에 나온 이름이다. ‘가짜 가족’은 프랑스행 비행기를 탄다. 전쟁의 땅을 탈출한 것이다.
영화는 이들 가짜 가족이 프랑스에서 살아가는 과정을 따라간다. 서로 이름조차 몰랐던 세 사람한테 파리는 낯설고 힘겹다. 총성은 없지만 경제적 무능력에 불법체류자라는 신분은 전쟁터의 불안과 공포를 떠올리게 한다. 낭만적인 파리가 결코 아니다.
두 번째 행운일까. 디판은 어쩌다 난민 지위를 인정받고, 파리 부근의 소도시 아파트단지 관리인이라는 일자리까지 구한다. 집안은 조금씩 ‘사람 사는 꼴’을 갖춰간다. 다투기만 하던 디판과 얄리니 사이에도 변화가 시작된다. 이런 게 행복일 것이다. 디판은 가끔 꿈을 꾼다. 선선한 바람이 나뭇잎을 간지럼 태우고, 커다란 코끼리가 가만히 등장한다. 종교적 신성함과 아스라한 그리움이 스크린 가득 배어있다.
그러나, 감독은 이야기를 더 밀고 나간다. 디판이 일하는 아파트 단지는 조직폭력배들의 소굴로 평소에도 긴장감이 흐르는 곳이다. 어느날 기어코 폭력배들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지고, 디판은 자신의 ‘마지막 전쟁’에 나선다. 디판을 연기한 배우는 실제 스리랑카 타밀 반군에서 16~19살 때 소년병으로 있다 프랑스로 망명했다.
오디아르 감독은 <예언자>(2009), <러스트 앤 본>(2012)으로 이미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이번 영화를 사랑이야기라고 본다면, <러스트 앤 본>에 견줘봐도 좋으리라. 인간다운 삶을 위해 싸우는 한 남자의 ‘용기’에 초점을 맞춰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이야기의 힘이 마지막까지 살아있다. 22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더 랍스터>(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홍보문구 그대로 ‘사랑에 관한 기묘한 상상’을 담았다.
똥배가 나온 40대 남성 ‘데이비드’(콜린 파렐)은 어느날 개 한마리와 함께 호텔을 찾는다. 짝을 찾지 못해 개가 된 형이라고 한다. 자신도 이 호텔 안에서 45일 안에 짝을 찾지 못하면 동물이 된다. “제가 바다를 좋아합니다. 동물이 된다면 랍스터가 됐으면 합니다.”
데이비드는 동물이 될까봐 짐짓 어떤 여자를 사랑하는 체 하지만,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호텔을 탈출한다. 그가 다다른 숲속에는 짝 찾기를 거부하고 혼자(솔로)만의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모여 산다. 사랑에 빠지면 가혹한 벌을 받아야 한다. 데이비드는 이곳에서 그만 어떤 여자(레이첼 와이즈)와 사랑에 빠지고 만다. 몰래 하는 사랑의 짜릿함과 위험이 교차한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가 살아가는 우리 사회에서, 영화는 좀더 절실한 우화로 다가온다. 우리는 사랑마저 포기하고 사는데, 저기는 사랑을 강제로 해야 한단다. 또는 반대로 사랑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세상일이 마음대로 안 된다고 하지만, 사랑, 그 놈 참 고약하다. <이터널 선샤인>(2004)과 <그녀>(2013)를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또다른 색깔의 사랑이야기를 만날 것이다.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배우들의 연기도 눈길을 끈다. 한꺼풀만 벗기면 우스꽝스러운 상황인데, 배우들의 연기는 퍽 진지하다. 배우들 뒤로 공작새와 낙타가 슬쩍 지나간다. 동물로 변한 사람들일 것인데, 피식 웃음이 나온다. 간혹 나오는 잔혹한 설정은 꼭 필요했을까 싶다. 29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가짜 가족 된 난민의 불안한 삶
실제 프랑스 망명한 반군출신 배우 심사위원대상 ‘더 랍스터’ 사랑을 찾지못하면 동물이 되거나
사랑에 빠지면 벌받는 기묘한 상황
우스운 상상 속 고약한 사랑 규칙
더 랍스터. 사진 그린나래미디어㈜·㈜콘텐츠게이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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