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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이겨서 울고, 져서 울고, 암튼 그냥 운다

등록 2015-10-20 20:54

‘울보 권투부’
‘울보 권투부’
재일조선인 학교 권투부 1년 다큐
점점 단단해지는 ‘울보 권투부’
권투, ‘왜’ 하느냐가 중요하다.

<울보 권투부>(감독 이일하)는 일본에 유학중인 감독이 ‘재일 조선인’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조선인학교를 다니는 고등학생 남자 아이들, 그것도 권투를 하는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담았다.

영화는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혐한시위 장면에서 시작한다. 일본이 계속 우경화 되는 속에, 아이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일제 강점기에 징용이나 먹고살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 뒤, 지금도 살고 있는 재일 조선인은 60만명으로 추정된다. 3, 4세는 기본이고 이제는 5세도 있다. ‘도쿄조선중고급학교’(도쿄조고)로 이들을 만나러 간다.

도쿄조고에는 ‘소조’(동아리) 활동이 활발하다. 그 가운데 코치 김상수씨가 이끄는 권투부가 전통을 자랑한다. 영화는 권투부 학생들이 1년 동안 겪은 일을 차근차근 쫓아간다.

예전에는 이곳 출신으로 세계 챔피언의 자리에 오른 선수도 있었지만, 요즘은 실력이 많이 달린다. 조선인학교 선수는 1990년대까지 일본의 공식 전국대회에 출전조차 못했지만, 출전할 수 있게 된 지금에 와선 실력 부족으로 예선전에서 떨어진다.

그런데 남자아이들은 시합 때마다 운다. 이겨도 울고, 져도 울고, 부상으로 링에 오르지 못하면 또 운다. 시합에서 지면 참 서러울 나이지만, 이 아이들은 좀 심하다. 손끝만 대면, 툭, 울음보가 터진다.

코치는 “시합은 상대가 있다. 질 수도 있다. 다만 최선을 다하지 않는 건 참을 수 없다”면서 아이들을 몰아붙인다. 가을 오사카에서 열리는 ‘중앙대회’를 맞아 여름방학엔 지옥훈련에 들어간다. 중앙대회는 전국의 조선인학교 권투부가 단체전을 치르는 전통의 대회이다. 코치는 말한다. “고된 훈련으로 키웠던 정신력이 사회에 나가면 더 중요하다. 고교 3년보다 졸업 뒤 인생이 훨씬 길다. 권투부에서 배운 것이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

영화 막바지, 졸업을 앞두고 권투부는 전통의 ‘인계 축제’를 벌였다. 마지막으로 다함께 훈련으로 땀을 흘리고, 후배가 선배한테 한 주먹씩 안긴다. 그리고 떠나는 3학년들은 후배들에게 한 마디씩 한다. “권투보다 권투부가 더 좋았다.” 선배도 후배도 함께 울먹인다. 이번엔 코치도 운다. “여러분은 당당하게 고된 훈련을 이겨냈다. 앞으로도 당당하라.” 발음과 문법이 약간씩 틀린 서툰 한국말이지만, 우리 말이 참 아름답다 느껴지는 순간이다. 진심이 담긴 때문일까.

몇몇 대목에서 싱겁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아이들의 키가 한 뼘씩 커가는 걸 보는 건 기쁨이다. 아이들은 “강해지고 싶어 권투를 한다”고 하는데, 주먹이 아니라 마음이 단단해지고 있다. 지난해 디엠지(DMZ)국제다큐영화제 개막작이며, 29일 개봉한다.

안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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