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전쟁이다. 또 이천수백년 전 <손자병법>은 13장 ‘용간(用間)’에서 간첩(스파이)이 전쟁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한다.
스파이 브릿지
소련 스파이 변호맡은 미국인
살해 위협속 스파이 교환까지 맨 프롬 엉클 1960년대 미국NBC 드라마 원작
미-소 스파이 힘 합쳐 임무수행 그 때문일 것이다. 스파이는 <007> 시리즈 등 숱한 영화의 단골 소재가 됐다. 대부분 스파이라는 ‘직업’에 각각 테마 음악과 함께 낭만의 옷을 입혔다. 그러나 <스파이 브릿지>(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는 이런 ‘포장지’를 벗겨내고, 스파이를 둘러싼 냉정한 현실을 담았다. ‘제임스 도노반’(톰 행크스)은 보험 업무를 주로 다루는, 미국 뉴욕의 ‘평범한’ 변호사다. 당시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극에 달해 핵무기의 공포가 미국을 사로잡고 있던 1950년대였고, 그는 어쩌다 소련 스파이 혐의로 체포된 ‘루돌프 아벨’(마크 라이언스)의 변호를 맡게 된다. 제임스는 변호사로서 직분을 다한 것뿐이지만, 적국의 스파이를 돕는다는 세간의 비난을 받는다. 어느날 밤에는 누군가 집을 향해 총을 쏘고 달아날 정도인데, 수사하러 온 경찰관마저 제임스를 비난한다. 때마침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첩보기가 소련 영공에서 격추당하고 조종사가 사로잡히자, 미국과 소련은 처음으로 스파이 교환에 나선다. 제임스는 스파이 교환을 위한 비밀 협상에 나서줄 것을 중앙정보국으로부터 요청받는다. 아슬아슬한 밀고당기기 끝에 독일 베를린 근교 ‘글리니케 다리’에서 전후 처음으로 스파이 교환이 이뤄진다. 미국과 소련은 이곳에서 스파이 교환을 계속했고, ‘스파이 브릿지’는 ‘은밀한 협상’을 일컫는 표현이 됐다. 미-소 냉전이 역사의 유물이 된 지 오래인 때문이겠지만, 영화는 일종의 ‘사극’이다. 미국에선 현재와 무관한 역사적 공간을 하나 설정하고 그 속에서 한 인물이 자신의 신념을 지켜가는 용기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아직도 냉전의 시퍼런 칼날 위에 서있는 우리 관객한테 제임스의 싸움은 ‘현재진행형’이다. 그가 대법원에서 소련 스파이에 대해 “좋은 군인이다. 적국의 군인한테 공정한 재판을 열어주는 것이 미국의 자랑이다”라는 취지로 얘기하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또, 소련 스파이의 달관한 듯한 모습은 삶의 고비를 숱하게 넘겨 깊이를 획득한 인물의 매력을 선보인다. 11월5일 개봉. <맨 프롬 엉클>은 1960년대 미국 엔비씨(NBC)에서 방송된 인기 첩보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영화다. 우리나라에는 <첩보원 0011>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이 시리즈는 <걸 프롬 엉클>이나 <엉클쇼>로 계속 가지를 뻗어 나갈 만큼 인기를 누렸던 스파이물이다. 원작처럼 영화 <맨 프롬 엉클>에서도 미국 중앙정보국 간판요원인 나폴레옹 솔로(헨리 카빌)와 소련 케이지비(KGB) 최정예 요원인 일리야 쿠리아킨(아미 해머)이라는 두명의 일류 스파이가 주인공이다. 원작에선 일리야 쿠리아킨이 전향한 스파이로 나오지만 영화에선 임무 때문에 힘을 합치는 것으로 나온다. ‘엉클’이라는 말 자체가 ‘세계스파이연합본부(UNCLE:United Network Command for Law and Enforcement)’라는 뜻이란다. 그들이 아무리 최첨단 첩보활동을 펼친다 해도 50년 전 이야기다. 1960년대 스파이들은 감시대상에게 손가락 굵기만한 도청장치를 꽂아두고 커다란 라디오를 들고 근처에 숨어 대화 내용을 엿듣는다. 녹음은 테이프로 했으며 손으로 그린 종이지도를 들고 추격전에 나선다. 이들은 감정에 휩쓸리거나 툭하면 딴청을 피우지만 어쩐 일인지 임무엔 그럭저럭 성공한다. 50년 동안 스파이물은 효용성의 원칙에 따라 스카웃과 정리해고를 거듭해왔다. 정도 많고 허점도 많았던 스파이(<입크리스 파일>, 1965)는 기만과 배신을 일삼는 스파이(<모스트 원티드 맨>, 2014)로 바뀌었다. 무엇보다도 스파이의 일터였던 냉전시대가 사라졌다. 일찍이 도태됐던 스파이들이 다시 부활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구가하는 첩보의 기술 때문이 아니라 우아하고 매력적인 첩보 스타일 덕이다. 위장복을 고르면서도 스파이는 패션 브랜드 파코라반과 크리스찬 디올 옷만 입으려 한다. 이들은 지금은 기성복 브랜드일 뿐이지만 1960년대엔 가장 전위적인 디자이너들이었다. 사교계 패션부터 그들의 격식차린 말투, 굉음을 내지만 결코 빠르지 않은 자동차들에다가 감추기엔 너무 큰 스파이 권총까지 하나같이 화려하고도 거추장스러운 1960년대 스타일이다. 냉전시대와 복고 스타일 스파이들은 기념품처럼 재현됐다. 영화 <킹스맨>에선 “매너가 인간을 만든다”며 예절바른 스파이를 보여줬다. 이번엔 스타일이 스파이를 만들 것인가. 28일 개봉. 안창현 남은주 기자 blue@hani.co.kr
살해 위협속 스파이 교환까지 맨 프롬 엉클 1960년대 미국NBC 드라마 원작
미-소 스파이 힘 합쳐 임무수행 그 때문일 것이다. 스파이는 <007> 시리즈 등 숱한 영화의 단골 소재가 됐다. 대부분 스파이라는 ‘직업’에 각각 테마 음악과 함께 낭만의 옷을 입혔다. 그러나 <스파이 브릿지>(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는 이런 ‘포장지’를 벗겨내고, 스파이를 둘러싼 냉정한 현실을 담았다. ‘제임스 도노반’(톰 행크스)은 보험 업무를 주로 다루는, 미국 뉴욕의 ‘평범한’ 변호사다. 당시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극에 달해 핵무기의 공포가 미국을 사로잡고 있던 1950년대였고, 그는 어쩌다 소련 스파이 혐의로 체포된 ‘루돌프 아벨’(마크 라이언스)의 변호를 맡게 된다. 제임스는 변호사로서 직분을 다한 것뿐이지만, 적국의 스파이를 돕는다는 세간의 비난을 받는다. 어느날 밤에는 누군가 집을 향해 총을 쏘고 달아날 정도인데, 수사하러 온 경찰관마저 제임스를 비난한다. 때마침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첩보기가 소련 영공에서 격추당하고 조종사가 사로잡히자, 미국과 소련은 처음으로 스파이 교환에 나선다. 제임스는 스파이 교환을 위한 비밀 협상에 나서줄 것을 중앙정보국으로부터 요청받는다. 아슬아슬한 밀고당기기 끝에 독일 베를린 근교 ‘글리니케 다리’에서 전후 처음으로 스파이 교환이 이뤄진다. 미국과 소련은 이곳에서 스파이 교환을 계속했고, ‘스파이 브릿지’는 ‘은밀한 협상’을 일컫는 표현이 됐다. 미-소 냉전이 역사의 유물이 된 지 오래인 때문이겠지만, 영화는 일종의 ‘사극’이다. 미국에선 현재와 무관한 역사적 공간을 하나 설정하고 그 속에서 한 인물이 자신의 신념을 지켜가는 용기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아직도 냉전의 시퍼런 칼날 위에 서있는 우리 관객한테 제임스의 싸움은 ‘현재진행형’이다. 그가 대법원에서 소련 스파이에 대해 “좋은 군인이다. 적국의 군인한테 공정한 재판을 열어주는 것이 미국의 자랑이다”라는 취지로 얘기하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또, 소련 스파이의 달관한 듯한 모습은 삶의 고비를 숱하게 넘겨 깊이를 획득한 인물의 매력을 선보인다. 11월5일 개봉. <맨 프롬 엉클>은 1960년대 미국 엔비씨(NBC)에서 방송된 인기 첩보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영화다. 우리나라에는 <첩보원 0011>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이 시리즈는 <걸 프롬 엉클>이나 <엉클쇼>로 계속 가지를 뻗어 나갈 만큼 인기를 누렸던 스파이물이다. 원작처럼 영화 <맨 프롬 엉클>에서도 미국 중앙정보국 간판요원인 나폴레옹 솔로(헨리 카빌)와 소련 케이지비(KGB) 최정예 요원인 일리야 쿠리아킨(아미 해머)이라는 두명의 일류 스파이가 주인공이다. 원작에선 일리야 쿠리아킨이 전향한 스파이로 나오지만 영화에선 임무 때문에 힘을 합치는 것으로 나온다. ‘엉클’이라는 말 자체가 ‘세계스파이연합본부(UNCLE:United Network Command for Law and Enforcement)’라는 뜻이란다. 그들이 아무리 최첨단 첩보활동을 펼친다 해도 50년 전 이야기다. 1960년대 스파이들은 감시대상에게 손가락 굵기만한 도청장치를 꽂아두고 커다란 라디오를 들고 근처에 숨어 대화 내용을 엿듣는다. 녹음은 테이프로 했으며 손으로 그린 종이지도를 들고 추격전에 나선다. 이들은 감정에 휩쓸리거나 툭하면 딴청을 피우지만 어쩐 일인지 임무엔 그럭저럭 성공한다. 50년 동안 스파이물은 효용성의 원칙에 따라 스카웃과 정리해고를 거듭해왔다. 정도 많고 허점도 많았던 스파이(<입크리스 파일>, 1965)는 기만과 배신을 일삼는 스파이(<모스트 원티드 맨>, 2014)로 바뀌었다. 무엇보다도 스파이의 일터였던 냉전시대가 사라졌다. 일찍이 도태됐던 스파이들이 다시 부활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구가하는 첩보의 기술 때문이 아니라 우아하고 매력적인 첩보 스타일 덕이다. 위장복을 고르면서도 스파이는 패션 브랜드 파코라반과 크리스찬 디올 옷만 입으려 한다. 이들은 지금은 기성복 브랜드일 뿐이지만 1960년대엔 가장 전위적인 디자이너들이었다. 사교계 패션부터 그들의 격식차린 말투, 굉음을 내지만 결코 빠르지 않은 자동차들에다가 감추기엔 너무 큰 스파이 권총까지 하나같이 화려하고도 거추장스러운 1960년대 스타일이다. 냉전시대와 복고 스타일 스파이들은 기념품처럼 재현됐다. 영화 <킹스맨>에선 “매너가 인간을 만든다”며 예절바른 스파이를 보여줬다. 이번엔 스타일이 스파이를 만들 것인가. 28일 개봉. 안창현 남은주 기자 bl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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