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영화사 백두대간 제공
[영화 리뷰] 우리가 사랑한 시간
“사랑에는 늘 어느 정도 광기가 있다. 그러나 광기에도 늘 어느 정도 이성이 있다.”(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
영화 <우리가 사랑한 시간>(감독 드레이크 도리머스)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이런 문구가 적당할 것이다. 40대 가장이 딸 또래의 18살 소녀와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이니, 그 사랑은 광기와 닮은꼴이다.
고교 음악 교사인 ‘키스’(가이 피어스)는 미국 뉴욕 근교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딸, 이렇게 셋이서 함께 살고 있는 평범한 가장이다. 어느 날 딸과 같은 또래의 여학생 ‘소피’(펄리시티 존스)를 집안에 들인다. 런던 출신의 소피는 교환학생으로 키스의 집에 한 학기 동안 머물게 된 것이다.
키스는 맨해튼 심포니의 서브 첼리스트로 가끔씩 무대에 서는 게 삶의 낙이다. 이런 와중에 키스는 소피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 반대로 소피는 키스의 첼로 연주를 듣는다. 그리고 서로가 같은 종류의 영혼을 가진 것을 직감한다. 분명 사랑인데, 둘은 이를 부정하려 몸부림친다. 둘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관객조차 숨을 죽이게 만든다.
40대 가장이 10대 소녀를 사랑하게 된다는 설정은 많이 되풀이된 게 사실이다. 그러나 두 사람이 클래식 음악을 매개로 영혼이 공명하고, 무엇보다 40대 가장이 젊은 시절 꿈꿨던 음악의 꿈을 되살리게 되는 과정을 영화는 훌륭히 포착해냈다. 소녀의 신비한 매력을 그려내는 감독의 솜씨가 돋보이고, 그 매력에 대비되는 40대 남자의 ‘누추한 일상’은 현실감을 준다. 40대 남성 관객들의 가슴에 깊숙이 파고들 영화이다.
우리말 제목은 조금 평범하게 들리는 ‘우리가 사랑한 시간’이라고 했지만, 원제는 ‘숨 들이쉬기’(Breathe in)이다. 이는 소피가 키스한테 긴장을 푸는 방법으로 가르쳐 줄 때 쓴 표현이지만, 두 사람의 영혼이 공명하는 순간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12일 개봉. 15살 이상 관람가.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