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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일상탈출 중년 여배우 적들에 펀치를 날리다

등록 2005-10-19 16:31수정 2005-10-20 14:27

영화 ‘빙 줄리아’
줄리아(아네트 배닝)는 런던에서 가장 잘 나가는 여배우 가운데 하나다. 부와 명예, 일에 있어 전폭적 지지자인 극장장 남편(제레미 아이언스)까지 아쉬울 것 없어 보이지만 줄리아는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다. 일은 피곤하고 삶은 지루하며 늘어지는 목주름은 디바로서 ‘유통기한 만료’를 가까운 미래로 예고한다. 그러던 어느날 자신의 팬이라고 찾아와 구애하는 스무살 미국 청년 톰 앞에서 줄리아의 마음 속 주름이 확 펴진다.

<빙 줄리아>는 30년대 런던의 극장이 배경인 드라마로 서머싯 몸의 소설 <극장(Theater)>을 원작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줄리아로 살기 또는 ‘줄리아다움’이라는 뜻으로 해석되는 영화 제목이 원작의 제목보다 더 그럴 듯하다. 영화는 줄리아로 산다는 것, 줄리아답게 산다는 게 어떤 건지를, 이 중년의 아름다운 여성이 알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빙 줄리아>는 ‘중년 여성의 자아찾기’라는 상투적인 문구로 요약될 만한 교과서적 여성주의 드라마는 아니다. 줄리아는 전략적인 복수극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쟁취해나가면서 ‘나답게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 나가는 것이다.

줄리아에게는 세상을 떠난 지 십년도 지났지만 지금도 식사시간이면 어김없이 그를 위한 자리를 마련해 놓는 연기 스승(마이클 갬본)이 있다. 스승은 줄리아가 톰을 만나서 소녀처럼 마음이 들뜰 때, 톰에게 뒷통수를 맞고 고통스러워할 때, 톰의 여자친구와 남편이 놀아났다는 말을 들으며 괘씸함에 마음이 흔들릴 때 어김없이 줄리아의 뒤에 나타나 ‘줄리아답게 연기할 것’을 주장한다. 줄리아는 마음 속 스승의 지도편달에 힘입어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자신을 ‘엿 먹였던’ 인물들에게 민첩하게 훅을 날린다. 그러나 복수를 위한 복수는 아니다. 자신을 최대한 빛나게 하면서 상대방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것이 나이든 여배우가 연기를 하면서, 인생을 살면서 얻은 복수의 지혜다.

물론 오로지 극장 수익과 관객평이라는 목표에서만 일심동체가 되며 다른 생활에서는 “지나치게 현대적인”인 줄리아의 부부관계나 아들로부터 “엄마는 모든 사람 앞에서 연기를 해요. 그래서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사람같아”라는 말을 듣는 줄리아의 삶이 완벽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줄리아의 ‘나답게 살기’를 위한 여정과 훈련은 나이먹어감을 피부로 느끼는 여성들에게 멋진 역할 모델로 보여질 수 있을 것같다.

서머싯 몸의 소설이 가진 뉘앙스처럼 다소 가볍게 느껴지는 줄거리에 무게감을 실어주는 건 아네트 베닝의 탁월한 연기력이다. 눈 아래 자글자글한 주름이 마치 세월이 안겨준 훈장처럼 보이는 이 중년 배우의, 순발력과 깊이를 동시에 갖춘 미소와 눈빛을 보는 것만으로도 <빙 줄리아>는 충분한 포만감을 주는 영화다. 27일 개봉. <메피스토> <엠마와 부베의 사랑>의 노장 이스트반 자보 감독의 2004년 영화로, 아네트 베닝이 지난해 오스카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디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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