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거장 허우 샤오시엔 감독이 28일 서울 계동의 한 찻집에서 자신의 영화 <자객 섭은낭>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는 당나라를 배경으로 한 무협영화인데, 감독은 “과장 없이, 무협의 예술화와 추상화를 추구했다”고 말했다. 사진 ㈜영화사 진진 제공
첫 무협영화 만든 허우샤오셴 감독
‘비정성시’ 만든 대만 거장 감독
8년만에 영화 ‘자객 섭은낭’ 내놔
리얼리즘 강조…우아함 자아내
“무협을 예술화하고 싶었다”
‘비정성시’ 만든 대만 거장 감독
8년만에 영화 ‘자객 섭은낭’ 내놔
리얼리즘 강조…우아함 자아내
“무협을 예술화하고 싶었다”
전혀 다른 스타일의 무협영화가 온다. 칼과 칼이 부닥치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보통의 영화와는 반대로 멀어지면서 원경을 잡는다. 이에 칼싸움은 춤이 되고,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자아낸다.
<자객 섭은낭>은 대만의 거장 감독 허우샤오시엔이 8년 만에 내놓은 작품이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인 바 있다. 드디어 다음달 4일 국내 개봉한다. 영화를 알리기 위해 방한한 허우 감독을 28일 서울 계동의 한 찻집에서 만났다.
영화는 중국 당나라 시대를 배경으로, 고위 관료의 딸로 태어났으나 어느 도사에게 보내져 암살자로 키워진 ‘섭은낭’(수치·서기)의 삶을 그렸다. 섭은낭은 어느날 스승으로부터 절도사이자 자신이 과거에 사랑했던 남자 ‘전계안’(장첸)을 암살하라는 명을 받는다. 섭은낭은 과연 전계안에게 칼을 겨눌 것인가.
허우 감독은 그동안 대만의 어두운 역사를 개인의 삶에 투영하는 묵직한 리얼리즘 영화로 이름을 얻었다. 이번이 그의 첫 무협영화다. 그는 “원래 어려서 무협소설을 많이 좋아했다. 대학생 시절에 소설 <섭은낭>을 보고 언젠가 꼭 영화로 만들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그는 그동안 타이페이영화제 등의 위원장을 맡으면서 8년간 작품을 못했는데 이번에 3년을 준비해 관객 곁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무협영화의 새로운 공식을 만들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액션 장면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피가 낭자하고, 싸움이 강조되며 중력을 무시하는 영화는 그동안 많았다. 무협영화를 예술화하고 추상화하고 싶었다. 과장이 없이 리얼리즘에 가깝게 표현하려 했다”고 답했다. 허우 감독은 “무협의 예술화”라는 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번 영화에서 빈번히 사용되는 롱쇼트 기법에 대해선, “영화에 담아낼 공간이 많아진다. 희극적 요소를 줄이고 리얼리즘을 강조하려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롱쇼트는 피사체를 멀리서 넓게 잡는 촬영기법인데, 이번 작품에선 관조적이고 정적인 시선을 효과적으로 강조한다.
허우 감독은 자신의 작품세계와 관련해 ‘현실 공간’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촬영 장소를 찾는데, “특정 장소에서 어떤 느낌이 올 때 영화 작업이 시작된다”고 했다. <빨간 풍선>(2007) 등 자신의 예전 작품을 예로 들면서 현실 공간에 주목한다고 설명했다. “길거리 장면을 찍을 때 이곳 저곳의 예쁜 것을 가져다 붙이는 게 아니라 현실 공간을 그대로 쓴다. 그것은 현실의 한계이고, 이것이 리얼리즘을 만든다. 현실의 한계가 있을 때 더 몰입할 수 있고 더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다”고 했다. 한계 없는 상상은 생각이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다는 얘기다.
허우 감독은 정치적 탄압 논란을 빚고 있는 부산국제영화제 사정도 잘 알고 있었다. “부산은 아시아 영화의 중심지가 됐다. 공공기관과 자본은 절대로, 절대로 정치적이든 어떤 이유로든 영화제를 탄압하거나 제한해선 안 된다. 영화제가 잘못되면 부산시 전체에도 타격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지난해 말 타이페이영화제와 관련해 시 당국의 여러 요구가 이어지자 대만 영화인들이 똘똘 뭉쳐 항의했던 사례를 들기도 했다. 결국 시 당국의 책임자가 경질됐다고 한다. 자리를 정리하면서 “일부 젊은 관객은 영화를 지루하게 느끼는 것 같다”고 묻자, 한 마디로 정리했다. “나이 좀 든 다음에 다시 보라.”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자객 섭은낭>의 한 장면. 사진 ㈜영화사 진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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