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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눈물 메마른 사람들 이 영화 꼭 보기를…”

등록 2016-02-22 19:07수정 2016-02-22 20:34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왼쪽)과 송경동 시인이 22일 오전 서울 시내 한 영화관에서 영화 <동주>를 보기에 앞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왼쪽)과 송경동 시인이 22일 오전 서울 시내 한 영화관에서 영화 <동주>를 보기에 앞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백기완-송경동 ‘동주’ 동행관람
“내가 어릴 때 꿈은 축구선수였고 이십대 초중반에는 영화감독이 꿈이었거든. 세상 사는 동안 이런 일 저런 일 있다 보니 영화감독 꿈은 사라졌지만, 감독이 되면 제일 먼저 만들고 싶은 영화가 윤동주와 송몽규 얘기였어. 그런데 이번에 둘을 같이 담은 영화가 나왔다고 해서 부랴부랴 극장으로 달려왔지.”

22일 오전 서울 시내 한 극장에서 시인 윤동주의 삶과 죽음을 그린 영화 <동주>(감독 이준익)를 본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최근 시집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창비)를 출간한 송경동 시인이 영화 관람에 동행했다. 시종 진지한 표정으로 영화를 보던 백 소장은 영화 막바지 윤동주가 조서에 서명하라는 일본 형사의 요구를 거절하며 격정에 찬 발언을 할 때에는 눈물을 흘리며 박수를 치기도 했다.

“영화에도 잠깐 나오는 문익환 목사한테서 두 사람 얘기를 많이 들었지. 그때도 내가 불만스러워했던 건 윤동주의 삶에서나 문학에서나 기독교와 지식인, 중산층의 모습은 있어도 민중의 삶이 없다는 거였어. 이번 영화에서도 그 점은 마찬가지였지. 그런데 영화 마지막 대목에서 윤동주는 그런 자신의 삶을 뒤집거든. 시만 써서 부끄러웠고 좋은 시를 못 써서 부끄러웠다고 일본 형사한테 대들 때 윤동주는 자신의 삶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다시 태어나게 하는 거거든. 그 대목이 감동적이었어. 영화를 보면서 여기 송경동 시인도 생각났고.”

백기완

“시만 써, 좋은 시 못 써 부끄럽다고
조서에 날인 거부하는 대목 감동적”

송경동 시인이 그 말을 받았다.

“윤동주 하면 그저 아름다운 시를 쓴 서정시인으로만 아는 이들도 많잖아요. 그렇게 맑고 아름다운 시를 쓴 분이 식민지 시대의 고통을 온몸으로 겪었고 결국은 감옥에서 비참하게 돌아가셨다는 건 잘 모르거든요. 윤동주의 곁에 송몽규 같은 혁명가가 있었다는 사실도 그렇구요. 그런 사실을 알게 하고 기억하게 해 준 것만으로도 훌륭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백 소장은 조서에 서명하지 않겠노라며 윤동주가 버틸 때 “지난날 내 감옥 생활도 떠오르고 젊을 때 썼던 시 ‘진술거부’도 생각 나더라”고 말했다. 흥미롭게도 송경동 시인의 새 시집에도 ‘진술을 거부하겠습니다’라는 제목을 단 시가 들어 있다. 4차 소환장에 이은 체포영장 발부 위협에 마지못해 찾아간 경찰서에서 취조를 받은 경험을 담은 작품이다.

“‘진술하지 않겠습니다’/ 나의 청춘을/ 나의 거리를/ 나의 고뇌를/ 결코 말하지 않겠습니다// (…) // 더이상 이 모욕적인 세상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진술을 거부하겠습니다’ 부분)

“영화 끝부분에서 윤동주가 창살 밖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는 장면이 특히 마음에 남았어요. 선생님과 함께 본 그 별들을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언젠가는 선생님을 그 별처럼 그리워할 때도 오겠구나 하는 생각에 영화를 보면서도 마음이 복잡해지고 눈물이 나오더라구요”라고 송 시인이 말하자 백 소장이 화답했다.

“감독이 그 별들을 우주의 한 물리적 존재로만 생각한 건 아닐 거야.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윤동주의 삶의 의미를 담으려 했던 거겠지. 윤동주가 일제 시대에 저항의 목소리 한번 제대로 내지 못했다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윤동주는 자신의 삶으로 싸웠다고 나는 생각해. 눈물이 메마른 사람은 이 영화를 꼭 보라고 하고 싶어.”

“저는 윤동주와 송몽규 시절의 지나간 일만이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야만에도 사람들이 좀 더 관심을 기울였으면 싶어요. 오늘 저녁은 제가 삼성전자 백혈병 농성장 당번이라서 현장에 갈 예정인데, 그런 국내 산업현장의 문제뿐만 아니라 가까운 이웃 나라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이 저지르는 착취와 억압에 대해서도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송경동

“윤동주-송몽규 시절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사회의 야만에도 관심을”

송경동 시인의 새 시집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표제작은 캄보디아와 방글라데시, 베트남 등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노동 탄압을 비판하면서 이웃 나라 가난하고 힘없는 노동자들과 자신이 둘이 아닌 하나라는 생각을 담았다.

“나는 한국인이다/ 아니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나는 송경동이다/ 아니 나는 송경동이 아니다/ 나는 피룬이며 파비며 폭이며 세론이며/ 파르빈 악타르다/ 수없이 많은 이름이며/ 수없이 많은 무지이며 아픔이며 고통이며 절망이며/ 치욕이며 구경이며 기다림이며 월담이며/ 다시 쓰러짐이며 다시 일어섬이며/ 국경을 넘어선 폭동이며 연대이며/ 투쟁이며 항쟁이다”(‘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부분)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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