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포트라이트’. 사진 ㈜팝엔터테인먼트 제공
실화 바탕한 영화 ‘스포트라이트’
교회 권력 상대로 성추문 파헤쳐
교회 권력 상대로 성추문 파헤쳐
언론의 값이 땅에 떨어진 나라에 살고 있기에, 우리들한테 저런 기자들과 언론사가 몇몇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스포트라이트>(감독 토마스 맥카시) 이야기다. 언론의 사회적 역할이 무엇인지 묻는 영화이기도 하다.
미국의 3대 일간지 가운데 하나인 <보스턴 글로브>는 1970년부터 기획취재팀을 운영하고 있다. 매일 벌어지는 일을 보도하는 게 아니라, 몇달씩 파고든다. 팀의 이름이 ‘스포트라이트’이다. 원래 무대의 특정 인물만 밝게 비추는 조명을 뜻하는데, 신문사에선 심층취재 또는 집중취재의 뜻으로 쓴다.
2001년 이 신문사에 새 편집국장이 부임하는데, 그는 한 가톡릭 사제가 성추행 추문에 연루됐다고 주장하는 며칠 묵은 칼럼에 주목하고 후속보도를 지시한다. 처음에 스포트라이트 팀 기자들은 괜히 ‘작은 사건’을 끄집어낸다는 시큰둥한 반응이다.
그런데, 팀 소속 4명의 기자들은 이 사건의 취재를 시작하면서 뭔가 있음을 직감한다. 그런 짓을 저지른 사제가 한두 명이 아닐지 모르는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무엇보다 가톨릭 교구 차원에서 이런 사실을 체계적으로 은폐해 왔다는 심증을 갖게된다. 교회 전체를 상대로 싸워야 하는 상황이다.
영화는 스포트라이트 팀이 ‘기자의 열정과 능력’으로 수많은 난관을 헤쳐나가는 과정을 충실히 담았다. 팀장 ‘로비 로빈슨’(마이클 키튼)은 외풍을 막으면서 팀 전체의 중심을 잡아준다. 중요 취재원을 설득, 또는 협박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막내 여기자인 ‘사샤 파이퍼’(레이첼 맥아담스)는 집집을 돌아다니며 피해자들의 닫힌 입을 연다.
특히, ‘마이크 레벤데즈’(마크 러팔로)는 교회가 꽁꽁 숨겨둔 결정적 문서를 확보하는 데 성공하는 행동파임에도, 피해자를 바라보는 따뜻한 눈이 인상적이다. <어벤져스>의 헐크 역할로 우리에게 익숙한 그 배우다. 이들 배우들은 과장 없이 균형잡힌 연기를 선보이는데, 각자의 몫에 충실함으로써 팀 전체가 영화의 주인공이 되도록 했다. 실화를 영화로 옮겨내는 감독의 연출 솜씨가 빛난다.
팀은 결국 70명의 사제가 어린이 성추행 사건에 연루됐음을 확인해 2002년 초 특종보도한다. 이 보도는 전세계 언론이 가톨릭 사제의 어린이 성추행을 추적하는 기폭제 구실을 했다.
기자의 꿈을 갖고 있거나 현직 기자라면 더 깊게 공감할 것이다. 저런 기자가 되고 싶고, 저런 사람들과 함께 취재하고 싶고, 저런 신문사에서 일하고 싶어질 것이다. 영화 초반, 신문사 발행인이 독자의 53%가 가톨릭 신자임에도 교회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취재를 허가하는 대목에 눈길이 간다. 영화는 전세계 64곳의 영화제(시상식 포함)에서 215개 부문의 수상 후보에 올랐고, 실제 상도 여럿 탔다. 24일 개봉, 15살 이상 관람.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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